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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Nov 14. 2019

우리도 '좀비랜드'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좀비랜드> 리뷰 

소심하고 겁 많은 남자 '콜럼버스(제시 아이젠버그).' 좀비 바이러스가 출몰하면서 대부분의 인간들이 좀비로 변한 미국, 좀비랜드에서 그는 언제나 확인사살을 하고 안전띠를 매는 등 철저한 조심성을 무기로 생존한다. 텍사스를 떠나 가족들이 있는 콜럼버스로 향하던 와중, 그는 '탤러해시(우디 헤럴슨)'를 우연히 만나 동행한다.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둘의 동행에 또 다른 생존자 '위치타(엠마 스톤)'와 '리틀 록(아비게일 브레스린)'이 더해지고, 서로에 대해 행선지와 별명 만을 아는 채로 4명 생존자는 좀비들이 가득한 미국을 횡단한다. 



좀비의 영화의 외형을 띈 <좀비랜드>이지만, 이 작품이 로드무비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4명의 주인공들은 우연히 서로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한 차량을 타고 여행을 떠나지만 이내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여러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가면서 종국에는 하나의 팀, 가족으로써 유대감을 깨닫고, 영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흥미로운 것은 좀비 영화라는 외형, 도상적 특징과 로드무비적인 특징의 결합이다. 비주류라 할 수 있는 좀비 영화의 특성이 무난하고 대중적인 영화 전개에 더해지면서 <좀비랜드>는 예상을 벗어난 진중한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좀비가 되어 유혈이 낭자한 세계관라면 처음 보는 사람들 간의 우연한 만남과 교류는 평범할 때보다 더 소중하고, 애틋할 테니까. 주인공 4명이 항상 다투고 싸우면서도 끝내 동행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서로에게 좀비가 아닌 인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좀비랜드에서 생존자, 인간은 소수자다. 다르고 이상하다는 이유로 사회의 다수인 좀비로부터 공격받고 배척받는 이들이다. 인간은 절대다수의 횡포로 인해 제각기 소중한 것을 상실했고, 목숨을 위협받으며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소수자인 인간들도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사기 치고, 총을 겨누고, 서로를 두려워하면서 오롯이 수단과 목적으로 대한다. 하지만 <좀비랜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람 사이의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인간성을 유지하고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인공인 콜럼버스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본 적이 없고, 가족과도 그리 원만히 지내지 못하며,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랬던 그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가 바로 여행 중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다. 그런데 이는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아들을 잃고 바보처럼 트윙키라는 과자만 탐닉하던 탤러해시, 사기꾼으로 목숨을 연명하던 위치타와 리틀 록도 이 기묘한 동행을 통해서야 좀비들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한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고, 사람들을 수단으로 목적으로 만나고 대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 한 구석에는 어린 시절처럼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이 남아있다. 결국 <좀비랜드>는 인간성의 회복에 대해서 말하는지도 모른다. 생존과 성공을 추구하며 정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나,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세계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이나 다르지 않다면서. 이처럼 로드무비와 좀비 영화의 만남은 자칫 평범한 B급 영화일 뻔한 <좀비랜드>를 사회로부터 도태된 사람들의 치유를 꿈꾸는 대범한 영화로 변신시키고 있다. 




그러나 세밀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아니었다면 <좀비랜드>는 그저 괴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세계관과 설정을 친절히 되짚어주는 생각보다 세밀한 연출, 좀비 영화의 클리셰를 과감히 깨버리는 규칙들, 할리우드를 겁 없이 비틀기, <킹스맨>을 보는 듯 사람이 죽는 비극적인 상황도 그 안에서의 유머 포인트로 만드는 연출 등이 더해지면서 진중하고 심각한 주제의식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물론 그러면서도 피가 넘치고 머리가 터져나가는 쾌감 또한 놓치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영화 분위기를 유지하는 큰 요인이다. 특히 제시 아이젠버그는 배우 본연의 독특하고 뛰어난 찌질남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영화의 b급 감성부터 로드무비 주인공으로서 다른 캐릭터와의 만남과 동행으로 인한 변화와 성장까지 훌륭히 표현해낸다. 우디 헤럴슨은 유머와 상실의 슬픔, 엠마 스톤은 책임감과 불신으로 가득한 각각의 캐릭터에 무게감을 잡아준다. 이처럼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자칫 따로 놀면서 기괴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영화의 분위기와 메시지 사이의 간극을 잘 메워주고 있다.


사실 영화 자체는 메이저 영화라 하기 힘들고,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 작품도 아니다. 그러나 좀비 영화를 좋아한다면, 스타 배우들의 풋풋한 과거를 보고 싶다면,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피로함을 느끼고 있다면 충분히 찾아볼만하 가치가 있는 영화가 바로 <좀비랜드> 일 듯 싶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회와 인간에 대한 유쾌하고 빨간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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