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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03. 2019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이집트에 남느냐, 떠나느냐

1. 출애굽기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신을 믿어라. 믿으면 복이 오고 믿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이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라는 텍스트는 역사책이 아니라 히브리 신화이자 종교 경전이다. 즉, 상징과 암시로 가득한 텍스트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출애굽기의 신을 꼭 우리가 생각하는 신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 바로 그러하다. <엑소더스>는 신을 단지 필연적으로 다가올 미래를 뜻하는 상징물로 치부한다. 이를 위해 신을 어린아이로 묘사하고, 신의 강력한 힘과 비이성적 측면을 동시에 묘사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덧입힌다. 대신 <엑소더스>는 모세와 람세스가 그들의 미래에 대처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바로 그 모습에 집중한다.



2. <엑소더스>의 초반부터 중반부까지 모세와 람세는 공통점이 더 많은 인물들이다. 무신론자로 등장하는 모세는 이집트의 신은 물론, 이스라엘의 신도 믿지 않는다. 그는 신이 아닌 인간이 운명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시나이 산에서 신을 만난 후에도,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장시켜서 이집트 군에 게릴라전으로 대항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시다. 람세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세의 경고를 무시하고 스스로가 신이라고 외치는 장면이나, 아버지 세티 1세가 존경했던 사제들이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며 처형하는 모습에서 그 역시 무신론자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둘은 신의 모습으로 다가온 미래에 맞서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린다.  



모세와 람세스는 각각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미래를 선택해야 했다. 이때 둘의 선택이 판이하게 다르다. 모세는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자신의 검을 홍해 바다에 던져버린다. 미래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까지 바꾸며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내린 것이다. 반면 람세스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신은 없으며 살인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의 신은 신이 아니라고 절규한다. '아이들 마저 죽이는 것이 정녕 너희의 신이냐?'라는 그의 외침은 신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신을 비난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둘 사이의 차이점은 홍해 바다에서 펼쳐지는 하이라이트 시퀀스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홍해에서 마주한 모세와 람세스는 바닷물에 휩싸여서 가라앉았다가 서로 반대편 해안가에서 깨어난다. 모세는 바다를 건너고, 람세스는 건너지 못한 채. 모세 곁에는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람세스의 옆에는 수장당해 죽은 이집트 병사들 사이에 함께한다. 물이 여러 신화들에서 새로운 탄생, 변화 등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한 시퀀스다. 결국 이 시퀀스는 이집트는 죽음이자 과거의 땅이고, 모세가 향하는 가나안은 생명이자 미래의 땅이며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기 위해서는 홍해라는 현재의 거친 바다를 다시 태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뚫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장면인 셈이다.  <엑소더스>는 이처럼 출애굽기를 신과 운명이 아닌, 인간의 의지를 중심에 두고 재해석해낸 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의지는 검투장에 끌려 들어가듯 미래가 오기를 기다릴지, 아니면 우리가 먼저 과감히 우리의 미래를 만들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3. <엑소더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동생인 토니 스콧 감독이 죽은 후 연출한 첫 작품이다. 토니 스콧은 그 역시 대단한 영화감독이자 스콧 프로덕션의 공동 창립자로 리들리 스콧에게는 동생이자, 신뢰할 만한 동료이자, 인생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그러한 동생을 떠나보낸 슬픔과 좌절은 쉽게 표현할 수 없었겠지만, 이 시점에서 그는 새로운 선택과 도전의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SF 장르와 호러 장르를 합쳐서 성공시킨 주역이자(에일러인), 디스토피아 SF의 시작이기도 하고(블레이드 러너), 이미 한 물 지난 장르라던 에픽 장르를 통해 아카데미까지 수상하며(글래디에이터) 끝없는 도전과 변화를 추구한 감독이다. 이러한 감독 본인의 경험과 상황적 측면이 <엑소더스>의 스토리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듯싶다.



4. 이러한 스토리 텔링을 돕는 것은 당연 리들리 스콧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이다. 원거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는 에픽 장르로서의 웅장함과 스펙터클을 강조해준다. 카데시 전투, 홍해 바다 장면, 이집트의 재난 장면 등이 그 예시다. 반면에 밑에서 올려다보는 카메라는 신이 내린 거대한 재난에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웅장함과 무력함의 공존과 충돌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엑소더스>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장르적 정체성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에픽 장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종교적이며 시대 배경 등의 고증적인 부분에서 리들리 스콧의 전작에 미치지 못하는 문제들이 눈에 띈다. 반대로 종교 영화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성경을 각색했고, 작품의 메시지 또한 신보다는 인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으로 말미암아 상술한 스토리적인 측면이 완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 외에도 디테일한 요소들, 특히 주인공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평면적인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점과 이들의 활용도 역시 일관성이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5. 따라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완성도적인 측면, 메시지적인 측면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홀한 스펙터클이 담긴 에픽으로서의 미학, 고전 중의 고전인 출애굽기를 과감히 새롭게 해석해낸 리들리 스콧의 새로운 시도, 그리고 이 시도에 담긴 그의 진심에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A (Acceptable 무난함)

미슐랭 스타 급 셰프의 도전적인 메인 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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