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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05. 2019

컨택트

언어, 시간, 소통과 오해의 태피스트리

1. 영화를 보고 나서 "디테일이 훌륭하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작중 세계가 너무나도 현실처럼 치밀하게 느껴지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다른 작품들이 무심코(혹은 의도적으로) 지나치는 부분을 끝까지 붙잡고 스크린에 구현하는 경우다. <컨택트>는 후자의 작품이다. 외계와의 만남에서 흔히 간과되는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느리지만 긴 호흡으로 다양한 시점에서 조밀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2. <컨택트>는 크게 3가지 시점에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 번째로 언어와 사고방식에 관해 묘사한다. 두번째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시간에 대해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와 소통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한다. 우선, <컨택트>의 스토리는 언어 결정론이라는 이론이 그 바탕이 된다. 언어 결정론은 간단히 말해서 개인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그 개인의 사고방식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메갈' '김치녀' 등의 단어를 거듭 사용하면 여성 혐오자가 되고 '한남충'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 남성 혐오자가 된다는 것이 언어 결정론의 핵심이다. 이 이론은 근래 핫한 이슈인 '정치적 올바름'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다만 독특하게도 <컨택트>는 인간의 언어뿐만 아니라, 외계인의 언어에 관해서 언어 결정론적인 입장을 지닌다. 즉 외계인의 언어체계를 받아들이면 인간도 그들처럼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3. 이러한 언어 결정론의 토대 위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인간 언어의 선형성을 헵타이드(외계인) 언어의 동시간성과 대비시켜서 시각적으로 유려하게 구현해내고 있다. 원형으로 생긴 헵타이드들의 우주선 '쉘'이나 마찬가지로 원형인 그들의 문자는 관객으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또한 드뇌브 감독은 영리한 편집으로 두 언어체계의 차이를 보여준다. 작중 주인공인 루이스는 언어학자로, 헵타이드와의 대화를 진행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 대화를 이어가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소녀의 환영을 목격한다. 이 소녀의 환영은 작중 플래시 백처럼 삽입되면서 그녀의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하지만 결말부에서 사실 이러한 플래시 백이 사실은 플래시 포워드로, 그녀의 미래 장면들이 삽입되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녀는 인간의 언어와 달리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시간을 구분하지 않는 헵타이드의 언어체계를 이해하고 수용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그녀의 사고방식이 급격한 전환을 이룬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루이스는 모든 시간 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보고 인식할 수 있었다. 이렇듯 외계인과의 소통이라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세심한 플롯과 시간을 가지고 노는 영리한 편집을 통해서 드뇌브 감독은 자칫 난해할 수도 있었던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와 묘사는 더 나아가서 기타 SF 작품들과는 다른 슬픔과 처연함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키기도 한다. 언어체계와 사고방식의 변화는 철저히 인간의 내면적 측면을 파고드는 요소다. 그렇기에 예정된 미래를 알면서도 새롭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경험하고, 이를 모두 감내해내는 루이스의 슬픔과 처연함이 관객들에게 더욱 깊게 다가올 수 있다. 그녀의 혼란과 고통과 깨달음을 온전히 공유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루이스의 감정선은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와 그녀의 연기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카메라를 통해 <컨택트>만의 독특한 감성의 결을 만들어낸다.

 


4. 마지막으로 <컨택트>는 서로 다른 타인 간의 소통에 있어서 역설적으로 언어 그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준다. 루이스가 불완전하게 해석한 헵타이드들의 문자에서 '무기'라는 단어가 나오자, 중국과 러시아 등은 외계인의 침입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전쟁 준비에 돌입한다. 무기라는 단어 그 자체보다도 어떤 맥락에서 그러한 단어를 사용했는지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헵타이드가 언급한 무기는 그들의 준비한 선물이 인류에게 무기가 될 거이라는 긍정적인 의미였다. 이는 우리가 비록 언어를 통해 타인들과 소통하지만, 언어는 결국 서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 선입견, 사회적 맥락을 뛰어넘는 매개체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외계인들의 존재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서 외계인이 등장했고, 그 존재로 인해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불안에 떤다는 면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 불안에는 외계인이라는 '타인', 그 존재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한 의심과 걱정이 밑바탕이 된다. 이는 그들이 우리와 다른 존재이기에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공격을 시도할 거라는 편견이 기본적으로 자리했음을 드러낸다. 결국 소통과 오해는 '무기'라는 단어 그 자체 가 초래한 것이 아닌 대화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이 초래한 셈이다. 이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화와 소통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손쉽게 발생하는 상황에 불과하다. 다만 그럼에도 의외로 주목하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한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아이러니를 드뇌브 감독은 지구인과 외계인의 거리감을 통해 스크린에 구현했을 뿐이다.



5. 영리한, 연출, 참신한 시각적 디자인,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편집에 인상적인 음악, 깊이 있는 스토리가 어우러져서 언어의 특성, 언어와 소통의 관계 등에 대해 성찰하는 품위 있고 독창적인 SF 영화. <컨택트>가 바로 그 영화다.


E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시간이라는 씨줄과 언어라는 날줄이 만나 소통과 오해의 태피스트리를 짜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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