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리뷰
1. 죽음과 감옥을 넘나들던 '할리 퀸(마고 로비)'과 조커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도 끝이 다가오고, 할리 퀸은 조커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과거 조커의 보호막 안에서 저지른 온갖 악행으로 인해 할리 퀸은 고담 시를 주름잡는 빌런인 일명 블랙 마스크, '로만 시오니스(이완 맥그리거)'에게 쫓기는 처지가 된다. 그러던 중 할리 퀸은 로만 시오니스의 약점을 카산드라 케인이라는 소매치기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그녀는 카산드라를 지키고 루만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직 경찰 르네 몬토야, 로만의 운전기사로 학대당하던 블랙 카나리, 킬러 헌트리스와 팀을 결성한다.
4년 전 개봉했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스토리, 편집, 액션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처참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그 와중에도 마고 로비가 연기한 할리 퀸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섹시한 이미지와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성격을 무기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기에 할리 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제작되는 것은 나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는 캐릭터의 매력이 영화의 완성도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데 그친 영화였다.
2. <버즈 오브 프레이>는 지금껏 공개된 모든 히어로 영화들 중 페미니즘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전달하는 작품이다. 블랙 마스크 역을 맡은 이완 맥그리거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여성 혐오, 맨스플레인에 대한 영화라고 밝히기도 했다.
작중 페미니즘은 두 가지 서사 안에서 드러난다. 하나는 남성 지배적인 구조에서 벗어나는 여성들의 서사로, 그 중심에는 부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할리 퀸이 있다. <버즈 오브 프레이>는 시작하자마자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낭만적으로 그려낸 할리 퀸과 조커의 러브 스토리를 할리 퀸이 조커의 보호 안에서 종속된 관계인 것으로 재설정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를 통해서 할리 퀸과 조커의 이별은 단순한 두 개인의 사랑 이야기에 가두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성이 지배적인 남성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이야기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카산드라, 르네 몬토야, 블랙 카나리의 이야기 또한 이와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받고 고통받은 여성들이 연대한다는 내용의 서사다. 이는 '버즈 오브 프레이'라는 히어로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서, 특히 두 차례에 걸친 액션 시퀀스 안에서 제시된다. 경찰서에서 할리 퀸과 카산드라가 함께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 놀이공원에서 다섯 명의 인물들이 블랙 마스크에 대항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3. 문제는 할리 퀸의 스토리가 말하고자 하는 남성으로부터의 독립은 명확히 전달되지만, 버즈 오브 프레이의 스토리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 간의 협력과 연대는 공허하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의 스토리텔링 방식, 연출, 편집이 모두 할리 퀸 한 사람에게 집중된 것이 그 원인이다.
마고 로비가 제작자로 참여한 만큼 작중 할리 퀸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보다 더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묘사된다. 마치 체조를 하는 것처럼 아크로바틱한 방망이 액션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다소 부족했던 할리 퀸만의 임팩트를 더해준다. 제 4의 벽을 넘나들며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연출이나, 그녀의 내레이션을 통한 1인칭 시점 스토리텔링, 시간 순서를 뒤집는 편집도 인상적이다. 마고 로비가 제작자로 참여한 <아이, 토냐>와도 유사한 연출과 편집은 미쳐버린 정신과 의사라는 할리 퀸의 캐릭터성, 성장담, 그녀와 카산드라의 동행을 효과적으로 묘사해 주기 때문이다.
4. 그러나 할리 퀸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과 별개로 이러한 연출과 편집은 스토리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는 할리 퀸이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한 팀이 되는 상황과 이유, 빌런인 블랙 마스크의 배경과 목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설명을 필요로 하는 스토리가 할리 퀸 1인칭 시점에서 맥락 없이 중구난방으로 제시되다 보니 영화가 전반적으로 난잡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재미와 몰입도가 할리 퀸이 스크린에 등장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큰 폭으로 널뛴다.
이는 DC 유니버스 영화들의 안 좋은 습관이 재발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저스티스 리그> 등 DC 유니버스의 영화들은 제작 단계에서 감독이 다루려는 내용 외의 다른 스토리들이 뒤섞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본래 할리 퀸 혼자 등장할 영화에서 <버즈 오브 프레이>라는 팀업 무비로 계획이 변경된 결과, 할리 퀸의 솔로 스토리와 버즈 오브 프레의 탄생 비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엉망으로 꼬여버린 셈이다. 오히려 할리 퀸이 조커를 떠나 자립하는 과정과 그녀가 카산드라를 만나고 함께 지내는 이야기만을 다루었다면 영화도 정돈되고 메시지까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5. 이 영화의 목적은 분명했다. 인기가 검증된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를 발판으로 여성 히어로 팀을 스크린에 멋지게 데뷔시키고, 할리 퀸을 DC의 데드풀로 만들어 DC 유니버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페미니즘의 정신을 전달해야 했다.
그러나 <버즈 오브 프레이>는 실망스럽다. 할리 퀸 외에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찾기 힘들다. 혼란스러운 기획에서 비롯된 영화의 완성도는 <아쿠아맨>과 <샤잠> 덕분에 올라갔던 DC 유니버스 영화들에 대한 기대치를 배신한다. 그 결과 영화 속 페미니즘은 평면적으로 묘사되고 설득력도 부족하다. 여전히 할리 퀸의 매력을 즐기기에는 충분하지만, 결국 그녀도 혼자의 힘으로 <버즈 오브 프레이>를 황홀하게 만들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