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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Feb 24. 2019

미쓰백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뜨겁게

1. 한 장르의 영화가 인기를 끌면 같은 장르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실제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이후에는 판타지 영화가, <어벤저스> 이후로는 슈퍼히어로 장르가, <컨저링> 다음에는 호러 영화가 연이어 개봉하기도 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도가니> 시작으로 <베테랑>, <내부자들>, <검사외전>, <더 킹> 등 수많은 이른바 '사회고발 영화'가 개봉한 바 있다. 이렇듯 특정 장르 영화가 인기를 끌다 보면 그 장르는 필연적으로 특정 법칙(내러티브 상으로나 도상적으로나)이 생기게 되고, 그 법칙이 지속되면 관객들은 그 장르 영화를 볼 이유를 잃는다. 왜? 모든 영화가 똑같으니깐. 그때가 되면 장르 영화는 변화를 시도하는데, 사회고발 영화 중에는 <미쓰백>이 바로 그러한 지점에 놓인 영화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미쓰백>은 (상업영화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정치적, 사회적 약자 간의 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2. <미쓰백>의 주인공은 미쓰백, 백상아다. 그는 가정에서는 어머니에게 학대당하고 사회에서는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주류에서 배척당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온몸에 상처 가득한 '김지은'을 만나는 순간, 제목인 <미쓰백>이 스크린에 나타나며 영화가 시작된다.


이처럼 영화는 시작부터 '약자 간의 연대'라는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이 약자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다. 우선 두 인물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약자인 여성이 속할 것이다. 또한 두 인물 모두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점에서 학대 아동 역시 약자라는 범주에 포함된다. 그 외에도 저소득층, 아동들도 그 목소리가 사회에서 매우 작기 때문에 약자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약자들 간의 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연대에 주목한 영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회고발 영화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피해자에 한정되며, 문제 해결을 하는 주체는 따로 존재한다. <미쓰백>은 이러한 통념을 파괴하며 사회의 가장 차가운 곳에서 함께하는 따뜻함이 설령 무력해 보일지라도 필요한 이유를 전한다.



3. <미쓰백>은 약자들 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약자'인 여성들의 시선이 강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백상아가 스스로를 미쓰백이라고 호칭하고 아줌마라는 표현을 강하게 거부하는 대목이다. 아줌마가 여성에 대한 외모적, 연령적 차별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는 다분히 여성 감독이기에 포착해 낼 수 있는 디테일인 셈이다.


그 외에도 지은이에게 공감하고 그녀를 돕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이 엄마가 '될 수 있는지'를 미쓰백이 고민하는 장면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왜냐하면 이 씬은 아동학대로 인한 미쓰백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면서 영화의 불편함을 극대화하는 장면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심하게 말하면 강요되는 모성애에 대한 거부감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미쓰백의 트라우마와 연결되기에 다소 간접적으로 제시되기는 하지만, 여성이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통념을 거부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는 아동학대라는 표면상 주제와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백상아에게 떠나가라고 말하는 어머니, 지은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미쓰백 그리고 지은이를 기분에 따라 학대하는 부모의 모습은 얽히고 얽히면서 부모의 자격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즉 부모는 자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동시에 사무적인 태도의 경찰들을 통해서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위의 개인적인 이유에 더해 사회적 제도상의 문제임도 꼬집는다. 이처럼 <미쓰백>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만 보이는 불편함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4. 이처럼 뛰어난 주제의식과 독창적인 화법에도 불구하고 <미쓰백>은 결코 잘 만든 작품은 아니다. 특히 가장 두드러지는 단점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스토리를 다루는 방식이나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법에 있어서 영화가 관객보다 먼저 흥분하곤 한다. 예를 들어 이희준이 맡은 형사 '장섭'의 경우 상식적이지 않을 정도로 과하고 감정에 충실히 행동한다. 미쓰백의 행동 이해가 되기는 하나 현실적이지 않은, 극을 전개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된 느낌이 강하다. 이는 영화의 개연성과 리듬을 해치고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동학대라는 영화의 소재를 강조하기 위해서 관객들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려던 선택임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실화를 각색했다는 자막을 통해 작중 사건과 인물들의 행동에 최소한의 외적 개연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주교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이라는 유사한 사건을 다룬 <스포트라이트>나 약자들의 연대라는 비슷한 주제의식을 지닌 <로마>가 차분한 분위기로 사건의 진실과 충격,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쓰백>의 선택이 최선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에 걸쳐서 미쓰백, 백상아의 감정에 오롯이 소름 끼칠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던 데는 '한지민'이라는 배우의 역할이 지대했음이 분명하다. 영화는 유독 한지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씬,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는 씬, 과거 회상씬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연출과 편집은 미쓰백처럼 강인한 캐릭터를 처음 맡은 한지민이라는 배우의 연기와 어우러지면서 백상아라는 인물을 기시감 없는,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히 미쓰백의 과거를 영화 내에서 최대한 숨기다가 그녀의 과거, 어머니와의 관계를 지은이와의 관계에 오버랩시켜 제시하는 씬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한다.


이처럼 <미쓰백>은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다. 그러나 독창적인 사유와 시선으로 진부할 수도 있었던 아동학대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스토리, 클리셰가 되어가는 장르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점은 분명히 <미쓰백>의 장점이다. 또한 영화라는 예술 작품이 현실의 사건들,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끝없이 사유할 때 탄생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담아낸 <미쓰백>은 설사 많은 단점이 있다 그 장점으로 인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A (Acceptable 무난함)

차가운 손들이 서로 맞잡고 어둠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낸 온기



*여성들을 사회적 소수자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여성을 사회적 소수자로 지칭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구 비율 상 여성이 소수는 아니니깐! 오히려 다수임에도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적 질서로 인해 정치적 권리가 부족한 정치적 약자, 혹은 사회적 질서에서 비주류가 된 사회적 약자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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