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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Feb 27. 2019

스포트라이트

언론의 권리와 책무에 대한 냉철한 사유

1. 특정 영역을 다른 영역과 갈라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경계'다. 그런데 이 경계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곁에서 보는 경계는 정체성을 결정하는 강인한 존재이지만, 정작 경계에 서서 보면 흐릿한 혼돈의 영역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계의 모순성은 어느 영역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데, 사회적 체계 중에는 언론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언론은 권력 기관도 아니면서 권력을 감시하고, 공적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공적 기관은 아니다. 또한 권리는 있지만 책임을 묻기는 마땅치 않은 존재다. 이러한 언론의 모순성을 바탕으로 이뤄진 사유의 결과물이 바로 영화 <스포트라이트>다. 



2.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 카톨릭 사제 아동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카톨릭 교회라는 거대 기관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건이기에 민감하고 소재의 특성상 선정적일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다행히도 그러한 느낌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소재를 자극적으로 다루기 이전에 씬 하나마다 묻어 나오는 인물들의 고민과 성찰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자들의 내적 갈등은 영화의 감정선과 주제의식을 이루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작중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은 카톨릭 신자거나, 과거에 성당을 다닌 카톨릭에 호의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건을 취재하면서 기자와 카톨릭 신자라는 두 얼굴 간의 대립을 통한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분투를 경험하며, 이는 영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카톨릭 교회가 저지른 조직적 범죄를 기자로서 고발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열정이 카톨릭을 믿는(또는 믿었던) 신자로서 밀려오는 실망과 충격을 만나 강렬한 감정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결말은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쾌감과 충격이 아니라 괘감, 충격, 씁쓸함, 안도감 등이 섞인 복합적 감정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여러 사회적 지위가 충돌하는 개인의 내적 갈등이 영화의 전체적인 감정선을 이루는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는 특히 '기자'로서 겪게 되는 내면의 충돌에 주목한다. 



<스포트라이트>는 기자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또한 가져야만 하는 내적 가치의 갈등을 외부로 확장시켜 제시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제목이기도 한 스포트라이트는 단순한 팀의 이름을 뛰어넘는, 기자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스포트라이트(특종)가 모든 기자들의 목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기자 한 명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은 스포트라이트 팀 내부의 갈등에 빗대어지고, 그렇기에 팀원 간의 갈등은 그들의 간의 외적 충돌이자 기자의 내적 충돌이 되기에 선명한 대립각을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 대립은 극이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원천이자, 각 인물들의 입체성을 강화하는 요소다. 


실제로 작중 주요 인물들은 기자가 가져야 할 주요한 가치들을 상징한다. '로비'(마이클 키튼)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샤샤'(레이첼 맥아담스)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공감력을, '마이크'(마크 러팔로)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하고 사건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강렬한 감정을 각각 보여준다. 이 세 명의 팀플레이가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 마이크가 법원으로부터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직후의 씬이다. 증거를 확보했으니 즉각 기사를 내야 한다는 마이크와 더 많은 사례와 증거를 확보해 전체적인 범죄의 체계를 고발해야 한다는 로비 사이의 다툼, 그 가운데서 균형을 잡는 레이첼의 모습이 담긴 씬은 한 기자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할 때 갖게 되는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을 모두 보여주는 저널리즘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다름없다. 



3. <스포트라이트>는 디테일이 아주 뛰어난 작품이다. 기자들은 언제나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고(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001년이다), 취재원의 이름을 기사에 실어도 되는지 물으며, 취재사실의 정확성을 기사를 내기 직전까지 검토하며 편집실에서는 기사의 단어 하나까지 다시 체크한다. 이 사소한 영화의 디테일, 인물의 셔레이드는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전체적으로 영화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제로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작중 가장 극적일 수 있는 순간조차도 기자 특유의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별 감흥 없이 해부당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영화의 또 다른 디테일과 만날 때는 매우 감정적으로 변하고, 이는 곧 언론의 책임을 묻는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이어진다. <스포트라이트>에 등장하는 변호사들은 영화 초반만 해도 카톨릭 교회와 결탁해 사제들의 범죄사실과 피해자들의 사연을 덮고 이와 관련된 진술이 변호사의 직업윤리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진술을 거부하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이러한 변호사들의 직업윤리는 그들의 울분을 토해내는 역할을 한다. 보스턴 글로브가 이 사건에 대한 변호인들의 제보를 무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의 디테일은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언론이 사회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사회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권력을 감시하는 그들의 임무를 다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언론의 관심이 없다면 억울한 피해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릴 방법이 없다는 것도 날카롭게 일러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스포트라이트>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낼 줄 아는 영리한 작품이다. 



4. 한편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카톨릭이라는 종교의 특징은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 또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할 경우에는 하나로 일치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다루는 아동 성추행 사건에서는 이러한 특징들이 모조리 피해자들을 억압하고 사건을 은폐하는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된다는 점에서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섬뜩한 영화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사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도 했고(다행히 한국에서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5. <스포트라이트>는 상업적인 매력이 있는 영화는 확실히 아니다. 액션도 없고, 영상미나 시각효과가 화려하지도 않고, 분위기도 차분하니 첫눈에 흥미가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소재인 '언론'을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깊게, 그리고 명과 암을 기자가 취재하는 듯한 시선으로 꼼꼼하고 차분하게 펼쳐 보이는 데 성공한다. 그렇기에 언론과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들이 없는 세상이 어떠할지를 조금이나마 알고 느끼고 싶다면, 그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놀랍게도 매우 잔뜩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로 변모할 것이다.    


O (Outstanding, 특출남)

스크린에 펼쳐진 저널리즘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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