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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Feb 21. 2019

원더우먼

진부함과 새로움,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1. <원더우먼>은 여성 주연의 히어로 영화이자, 피터 젠킨스라는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이며, 최근 할리우드의 정치적 올바름 열풍과 맞물려 페미니즘 영화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북미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그리 큰 흥행을 하지 못했는데, 이는 퍽 아쉬운 대목이다. 왜냐하면 <원더우먼>은 히어로 영화로써도, 페미니즘 영화로써도 준수한 완성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2. <원더우먼>은 히어로 영화의 고전적인 구조를 답습한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구조로 영웅의 탄생-성장-역경-각성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스토리는 크게 새로운 부분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스토리의 진부함은 스토리의 안정감이라는 쌍둥이 자매가 존재하기에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특히 새로운 시리즈의 출발과 한 세계관의 부활을 책임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대중성이 검증된 스토리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단조롭고 장단점이 분명한 스토리 구조이지만, 이러한 구조에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은 입체적인 캐릭터, 개연성 있는 스토리텔링, 화려한 CG와 준수한 액션씬이다. 아레스는 '조드 장군' 이후로 DC 유니버스에 처음으로 등장한 제대로 된 빌런이다. 분량이 적은 점이 아쉽지만 아레스는 스토리의 반전을 담당하기도 하고, 널리 알려진 '전쟁의 신'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 차원 발전한 형태의 빌런으로 등장한다. 일차원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렉스 루터와 둠즈데이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낸 셈이다.  



주인공 '다이애나'는 관객들이 기대한 강인한 여전사 그 자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그 내적 성장도 잘 묘사되었다. 특히 일방적으로 인간을 돕는 선역이 아닌, 인간에게 실망도 하고 그 실망을 극복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다. 크리스 파인이 맡은 '스티브 트레버' 역시 눈에 띄는 캐릭터다. 그는 다이애나의 성장과 각성을 돕고, '인간은 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선함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영화의 인간애적인 주제를 대변한다. 또한 그는 1910년대라는 시대상에 맞지 않게 여자인 다이애나의 능력을 인정하는 진보적인 캐릭터로 이 작품의 핵심적인 캐릭터다. 이처럼 상부상조 관계에 있는 두 인물의 로맨스는 뻔하지 않은 마무리까지 보여주면서 영화의 다채로움을 극대화한다. 그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주인공 원더우먼보다 스티블 트레버가 더 기억에 오래 남기도 했다.  



<원더우먼>은 그간 DC 유니버스가 비판받던 대목인, 민간인의 피해를 신경 쓰지 않는 히어로라는 지적을 영리하게 피해나가는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며 이러한 연출은 다이애나가 내적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된다. 이는 그간 DC 유니버스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깔끔한 스토리텔링으로 전작들의 함정을 피터 젠킨스 감독이 잘 피해 간 흔적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DC 유니버스의 장점인 액션과 볼거리를 잘 살려냈다. DC 유니버스의 가장 큰 특징인 화려한 액션은 원더우먼의 다양한 무기들, 초인적인 힘과 스피드, 신적인 능력을 통해 스크린에 멋지게 펼쳐진다. 영화 중반부 잭 스나이더의 손길이 느껴지는 "No Man's Land" 시퀀스가 대표적으로, 슬로 모션을 활용한 액션이 강렬하다. 그렇기에 <원더우먼>은 히어로 영화로서의 미덕은 확실하게 갖춘 작품이다.



3. 하지만 <원더우먼>은 단순한 히어로 영화만은 아니다.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적 기반에서 탄생했기에, 영화 역시 페미니즘적인 측면을 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원더우먼>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같은 전철을 밟은 영화로, 남성을 깍아내리기보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주체임을 강조하려고 노력한다. 스티브 트레버가 "당신이 할 일을 해요. 난 내가 할 일을 할 테니"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독일군과의 첫 전투에서 다이애나가 선두에 나서고 스티브가 지원하는 형식으로 싸우는 연출은 이 영화의 지향점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1910년대로 설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10년대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여성들의 일자리가 늘어났던 시기이며, 이를 바탕으로 발언권이 강해진 여성들이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을 더욱 확대한 시기이다. <원더우먼>은 이러한 1910년대의 사회상을 다이애나의 능력과 대조해 묘사하면서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묘사는 1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젠더 간 차별과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효과도 있다.


바로 이 장면

이처럼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주창하면서도 <원더우먼>은 남성 가부장제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파괴하는 연출도 보여준다. 영국군이 참호 속에서 두려워하며 전진하지 못할 때, 다이애나가 지루한 참호전의 양상을 뒤바꾸는 시퀀스는 남성적 위계질서를 영상적으로 파괴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왜냐하면 원더우먼이 주로 활동하는 전쟁터와 군대라는 집단은 여성을 타자화하고 그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서 기능하는 남성성의 상징이자 남성이 권력을 유지하는 질서이기 때문이다(솔직히 한국 군대가 아이돌 걸그룹, 여군, 병사들의 애인을 대하는 방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이애나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전세를 유리하게 바꾸기까지 하는 '여전사'이기에,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남성 권력에 도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즘적 묘사가 전체적인 영화 전개에 어긋나지 않기에 더욱 효과적이기도 하다.



4. 다만 <원더우먼>에도 한계점은 존재한다. 히어로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후반부 하이라이트의 연출이 너무나도 기초적이고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CG로 가득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다. 이 외에도 전체 유니버스에서 원더우먼에 대한 설정이 붕괴된다느 점, 여러 조연들이 맥거핀화 되는 점, 작중 빌런 아레스에 대한 복선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다. 페미니즘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원더우먼은 전체 DC 유니버스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타 남성 히어로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 존재 의의를 확보할 수 있으며, 여전히 '섹시한 여전사'라는 섹슈얼리티적인 측면에서 소비된다는 한계를 지닌다. 주연 배우인 갤 가돗이 신체적 특성상 원더우먼에 어울리지 않다거나 코스튬과 관련된 개봉 전후의 논란이 이를 증명한다. 이는 (상업적 요소를 고려했기 때문이겠지만) 여전히 여성을 타자화하는 남성적 시선을 <원더우먼>이 완전히 거절하지는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더우먼>은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써, 여성 감독이 제작한 여성 히어로 단독 주연작으로써, DC 유니버스의 희망으로써 여전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그렇기에 더욱 발전된 액션과 스토리텔링, 캐릭터의 성장을 통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점들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면서 <원더우먼 1984>를 기대해본다.


A (Acceptable  무난함)

시대를 구해낸 히어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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