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전달과 본질 사이에서
1. <뉴스의 시대>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상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에 대해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는 흔히 '일상의 철학자'라고도 불린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낭만주의적 사랑, 사랑의 권태기, 또 예술작품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많이 소비되어서 소비하고 있는지 조차 인식 못하는 '뉴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현재의 뉴스 체제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뉴스에 종속되게 만든다고 단언한다.
2. 알랭 드 보통은 뉴스를 정치/경제/해외/일상/샐러브리티 뉴스 등으로 나누고 각 뉴스가 전달하는 내용과 형식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뉴스는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뉴스임에도 너무나도 지루하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경제뉴스는 너무도 거시적이고 큰 수치에 일상이 매몰되어 있다. 해외 뉴스는 계몽주의적 입장에서 확대되었으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도 멀리 있는 일이라 감흥도 없고 그래서 자극적인 사건에 치중하며, 일상과 셀러브리티 뉴스는 독자들의 자존심을 공격하고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뉴스에 치여 사는 셈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뉴스를 다시금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물론 서로 다른 뉴스 영역에서 서로 다른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종합적인 맥락 안에서 보면 저널리스트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들을 내러티브 안에서 전달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현재 뉴스는 무맥락 안에서 제시되기 때문에 일상 안에서 소비자들에게 감흥도 도움도 주지 못하며, 그렇기에 아무리 중요한 정보가 담긴 뉴스라 하더라도 가십 뉴스들에게 밀려나는 것이다. 실제로 <뉴스의 시대>는 소설, 비극 등 문학과 뉴스라는 두 장르를 비교하며 내러티브 안에서 제공되지 않는 뉴스가 왜 인상적이지 않은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소비자의 입장에서, 뉴스의 전달 방식과 내용에 문제제기를 하는 대목은 왜 그가 '일상의 철학자'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현재 뉴스의 문제점을 모두 짚어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 알랭 드 보통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 중심의 뉴스 '전달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합리적인 문제제기이고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재 뉴스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뉴스의 본질(뉴스와 사실의 관계)과 관련된 문제제기에는 소홀하며 이는 상당히 아쉬운 점이다.
지극히 뚜렷한 우선순위에 의거해 새로운 세상을 공들여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 (...) 뉴스를 공급할 책임을 진 매체들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대체로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 우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이렇듯 <뉴스의 시대>는 뉴스가 담아내는 사실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는 하나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물론 원하는 논의에 집중하기 위해서겠지만, 경험적으로 이를 깨닫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실에서 뉴스의 객관성에 관련된 문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미국 대선 당시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의 보도 내용은 정파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곤 했다. 국내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뉴스들 또한 같은 수치와 사실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그 뉘앙스가 정반대로 달라지곤 한다.
이는 뉴스의 본질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는 '사실'이 뉴스의 내용을 이루는 '팩트'가 될 때는 항상 편집자들의 게이트 키핑 과정을 거치는 부분에서 유발한다. 뉴스는 현장 기자와 편집자들에 의해 수 차례에 걸친 편집 과정을 걸쳐서 만들어지기에 뉴스는 필연적으로 편집자들의 주관성이 개입되며 그렇기에 이른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은 어찌 보면 이미 언론의 주관성이 개입된 오염된 사실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것과는 달리, 그리고 설사 전달 방식이 아무리 소비자들의 흥미를 잘 자극하고 여러 맥락 안에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지더라도 뉴스 자체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4.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랭 드 보통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가 통찰해낸 전달 방식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뉴스에 변화를 주기 위해 접근하기에 용이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론화되고 체계화되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저널리즘과 뉴스는 위와 같은 문제가 있더라도 여전히 종교와 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 뉴스는 우리가 한때 신앙심을 품었을 때와 똑같은 공손한 마음을 간직하고 접근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널리즘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는 하다. 큐레이팅 뉴스, 맞춤 설정 뉴스, 인공지능 뉴스의 등장과 역의제 설정 이론의 발생 등이 대표적인 변화의 예시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형식적 변화에 맞춰 뉴스의 전달 방식, 내용과 관련해 필요한 변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1. 정치뉴스는 대중의 머릿속에 세련되고 관용적인 국가를 그려 넣으면서도,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만한 순간과 집단적 공감대가 생성되는 순간을 잡아내야 한다.
2. 경제뉴스는 상품 아래에 놓인 인간적 현실을 일깨워 감사하는 마음, 정의로운 분노, 죄책감과 경외라는 유익한 감정을 촉지 할 것이다.
3. 해외 뉴스는 기자의 개인적인 견해도 첨가된 다른 나라의 초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보도의 중립성에 대한 집착을 저쪽으로 치워야 한다.
4. 셀러브리티 뉴스로부터 우리는 시대의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들을 소개받고, 그들로부터 영감과 조언을 얻어내는 법을 안내받게 될 것이다.
5. 소비자 정보 뉴스는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우리 내면의 열망에 최선의 답을 줄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로 무장할 것이다.
이는 당장 실현되기 힘든 요구사항일지도 모른다. 언론들은 내러티브를 제시하기보다 그들이 믿는 팩트를 가다듬는데 관심이 더 많기도 하다. 하지만 점차 다원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제언들은 필시 이뤄질 만한 일들이기도 하다. 이렇듯 <뉴스의 시대>가 의미 있는 것은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보는 알랭 드 보통의 사유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평범한 것을 다르게 보고 끊임없이 불편하게 느낄 때만 새로운 변화를 맛볼 수 있으니깐.
뉴스가 더 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