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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r 01. 2019

숨결이 바람 될 때

필연이라면, 의연하게

1. 죽음. Death.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직접 말해줄 순 없는 '관념' 상의 존재다. 그래서일까.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데스와 같이 공포의 대상이고, 예수처럼 극복하고자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2. 죽음을 극복한다. 이 명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불멸의 삶을 살겠다는 뜻이 수도 있고, 명예와 영원히 기억될 이름을 얻어보겠다는 말일 수도 있으며, 죽음을 거부하지 순리대로 따르겠다는 말도 포함될 수 있다. 어느 의미든, 우리의 인생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3. <숨결이 바람 될 때>는 36살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한 뇌신경과 레지던트인 "폴 칼라니티"의 자전적 이야기다. 이 책은 3가지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그가 성장하고, 자라나고 인생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막에서의 유년 시설은 그에게 죽음이라는 존재를 어렴풋하게라도 알려준 시기였다. 


어느 날 오후, 낮잠에서 깨어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내가 시체처럼 보였는지 콘도르 몇 마리가 빙빙 맴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고민했고, 지인들을 통해 뇌과학의 세계에도 눈뜨게 되었다. 이후 그는 영문학을 공부한 이후 의대에 진학했고, 뇌신경과 레지던트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작가로서, 의사로서 또 한 명의 철학자로서 항상 죽음과 삶에 대해 고뇌하곤 했다. 그러던 그는 스스로도 '인생의 정점' 이르렀다고 생각할 때, 암 선고를 받고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와 그의 가족이 함께하는 투병 생활과 그의 죽음까지가 책의 2부이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병 때문에 사라져 버렸던 내 경력이 다시 손에 잡힐 것처럼 보였다. 승리를 축하하는 팡파르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런 날이 올까 봐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었어.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
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내 루시가 이어 쓴 기록이 책의 3부이다. 본인이 쓴 기록이 나닌 다른 제 3자가 쓴 기록을 읽는 것은, 더욱 객관적이면서도 너무나도 감상적이기에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이처럼 폴의 고민과 고민이 모두 담긴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재능 넘치는 한 개인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재미,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가슴 아픈 투병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 가족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죽음에 맞서는 좌절과 용기까지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일은 너무나도 쉽지만 의식적으로 책장을 빠르게 넘기지 않고 싶어 지기도 한다. 

 

4. 시한부 인생을 다룬 영화나 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작가가 경험한, 고찰한 인생의 법칙과 진리가 진정성과 함께 전달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 문장은 인간이 죽어야만 한다는 명제를 뜻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폴은 의사로서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환자가 되어보니 그동안 그의 경험이 무의미했던 것을 깨달은 뒤 책에 저렇게 적었던 것이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는 지옥을 맛보는 거나 다를 것이 없었다. 


본인이 계획하고 꿈꾸던 생은 끝나버렸고, 그가 계획한 미래는 산산조각 났다. 

본인이 알던 의학 지식은 그를 구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본인이 믿던 가치와 세계관은 병으로 인해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혔다.

본인이 항상 알고 싶어 하던, 그러나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죽음이라는 대상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폴에게 인간의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말이나 병이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 모두 개소리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왜냐고? 그는 그의 한계를 직접 경험했으니깐. 하지만 그가 자신의 한계를 만나 그대로 멈춰버렸다면 그도 그의 책도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고, 한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죽음과 대면했다. 마지막 숨결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이런 그의 다짐은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에 담겨 있다. 


나는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걸어갈 거야. I can't go on I will go on.  


5. 그가 죽음을 마주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그의 직업인 의학이 아닌, 문학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학은 그의 투병 생활 내내 힘이 되었으며, 그의 가치관 중심에 있기도 했다. 그는 과학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인위적으로 재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세상의 본질적인 것, 암에 걸리자 뚜렷하게 보인 "인생의 본질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등등)"은 과학이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측면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은 문학뿐이다. 


역사적으로도 (상술했던 것처럼) 인간은 신화/종교/소설을 가리지 않고 죽음에 대처하는 법을 만들어 왔으며 이는 세대를 거쳐 전해지고 재탄생하고 새로운 작품들에게 영감이 되기도 했다. 아마 과학이 발전하기 전부터 우리는 문학과 예술이 갖는 힘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폴 칼라니티 역시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작가의 삶을 선택해 죽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글을 쓰며 의연하게 죽음에 맞섰던 것이 아닐까. 죽음과 삶에 대해, 죽음을 이해하고 이겨내는 방식에 대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된다. 


내가 책의 저자라면,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죽음을 논평하고 또 기록할 것이다.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미셸 드 몽테뉴


죽음과 삶을 이해하고 싶을 때, 고귀한 영혼을 만나고 싶을 때, 마음속에 바람이 한 가닥 불었으면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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