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리우드는 수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산업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들은 영화와 다른 예술을 구분하는 특징 중 하나인 상업성을 최대 국부로 활용할 줄 안다. 블록버스터, 다중 플롯, MTV, 3D와 아이맥스, 프랜차이즈 시리즈 영화 등 할리우드는 시대에 발맞춰 기술적/형식적 방법에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관객들을 고정적으로 영화관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MCU의 10주년 작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이러한 할리우드의 노력이 어느 지점까지 도달했는지 볼 수 있는 최신의, 최정점의 작품이다.
2.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에는 지난 10년간 마블의 세계관을 만들어온 어벤져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파이더맨, 블랙 팬서, 닥터 스트레인지 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해 수많은 서브플롯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곧 스토리의 진행이 필연적으로 빠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각각의 히어로 간의 출연 분량과 등장/퇴장 타이밍, 그리고 히어로들이 서로를 조우하는 타이밍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독인 루소 형제는 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다. 이를 가능케 한 요인은 간단하다. <인피니티 워>가 할리우드의 메이저 배급사들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인 이른바 '시네마틱 유니버스' 형식의 영화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관 속 서로 다른 주인공들이 개별적인 스토리를 풀어가다 서로 간의 접점이 생기면서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 라인을 만드는 시리즈물. 이것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정의이며, 루소 형제가 <인피니티 워>를 만들어낸 방식도 철저히 유니버스적이기다. 이전의 <어벤져스>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시리즈의 정체성을 최대한 강조하려는 듯 히어로들의 단독 영화의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여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루소 형제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그간의 단독 작품들을 적절히 활용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토르:라그나로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타노스의 단독적인 스토리라인을 더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들을 한데 묶어 <어벤져스>로 만들어주는 것은 Alan Silvestri의 음악이다. 어벤져스 메인 테마가 나오는 순간, 이 영화는 <어벤져스>로 탄생한다.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어벤져: 인피니티 워>는 작품 내적으로 복잡한 배경 설명과 잔가지들을 쳐내고 정말 필요한 내러티브만 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관객들이 이전 시리즈의 내용을 다 안다고 가정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 외적으로는 단독 시리즈의 팬들을 한데 모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계약 기간을 따지면서 이후의 진행을 예측하는 등의 파급효과를 통해 엄청난 흥행을 이뤄낼 수 있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인피니티 워>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처럼 가장 트렌디한 외관을 지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지만, 이 영화는 동시에 가장 클래식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위해 사적인 감정까지도 포기하는 영웅(타노스),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고 성공의 문턱에서 실패하며 좌절하는 영웅(토르), 예정된 운명을 거스르려는 영웅(완다, 비전, 토니 스타크, 스티브 로저스와 모든 히어로)까지. 영화 속 히어로들은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 고대 그리스 비극 속 주인공들의 상황과 외관만 살짝 바꾼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영웅들의 도전과 그들의 실패, 좌절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는 비극의 결말과, <인피니티 워>의 충격적인 엔딩이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놀랍지 않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바로 영화 속 타노스와 토르의 대립 구도이다. 둘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고 영화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캐릭터이다.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한데 모으며 '인피니티 워'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이룰 때, 토르는 모든 히어로들 중 타노스를 향한 복수심이 가장 큰 영웅이라는 점에서 '어벤져'라는 정체성을 잘 대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타노스를 주인공으로 보면 그의 희생에서, 토르를 주인공으로 보면 그의 처절한 실패에서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리스 비극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영화의 메시지 역시 고전적이다. 선과 악의 대립을 다룰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단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와 같은 딜레마가 등장하며 타노스는 전자, 어벤져스는 후자를 대변한다. 어벤져스는 결국 '비전'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까지 포기하며 타노스에 대항하지만 끝내 패배하는데, 히어로 영화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살짝 비틀린 전개는 엄청난 충격을 자아내며 가장 감정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노스를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때, 결국 그를 막지 못하고 실패하는 히어로들의 최후는 어떤 면에서 매우 당연한 일이며 <인피니티 워>가 클래식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고도 하다.
4. 할리우드 영화들 중 기존의 시리즈물이나 프랜차이즈 영화들은 현재 많은 한계점에 봉착해 있다. 억지로 스토리 라인을 늘리다가 큰 비판을 받거나(스타워즈 & 트랜스포머), 과거로 돌아갔으나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거나(해리포터 & 반지의 제왕), 다른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007 & 본 시리즈). 이러한 상황에서 MCU는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할리우드에 제시했다. 그리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자신들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할리우드 최신의 트렌드와 고전미 가득한 스토리, 준수한 완성도를 바탕으로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상업적인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치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과연 다음 영화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어떠할지. 2주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