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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pr 13. 2019

나를 찾아줘

클리셰를 사이에 둔 관객과 감독의 줄다리기

1. <스노우맨>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에는 꾸준히 반복되는 표현이 하나 등장한다.

아내의 살인범은 언제나 남편이다


이 표현은 사실 다른 수사물이나 스릴러 장르에서도 통용되는 클리셰이다. 클리셰는 특정 장르의 관습화 된 스토리 전개 방식을 뜻하고, 관객들은 이를 통해 기대했던 장르물의 재미나 클리셰가 뒤틀릴 때의 색다른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찾아줘> 역시 위의 클리셰가 활용되는 작품 중 하나로, 클리셰가 파괴될지 유지될지를 두고 영화(감독)와 관객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인상적인 영화다.



2. 영화의 전반부는 전형적인 수사물이자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대한 클리셰는 물론 불리한 정황에 둘러싸이며 행적이 의심스러운 주인공, 숨겨진 애인, 엇갈리는 의견으로 대립하는 형사(경찰), 가십만을 파고들며 사건을 키우는 미디어, 시의적절하게 등장하는 사건의 단서들처럼 예측 가능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관습들과 복선들이 연이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나를 찾아줘>의 클리셰는 단순한 관습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가 클리셰를 활용해 관객들과의 수 싸움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핀처 감독은 전형적인 전개와 의외의 흐름을 뒤섞으면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지속적이고 인상적인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그 덕분에 <나를 찾아줘>의 전반부는 전개와 결말을 예측하려는 관객들을 엄청난 몰입감에 빠뜨릴 수 있다.



3. 영화의 후반부는 사이코 드라마다. 주인공인 닉 던(벤 애플랙)과 에이미 던(로자먼드 파이크)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선이 세밀히 묘사되며,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특히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가 놀라운데, 극의 전개를 담당하는 능동적인 인물이자 급격한 심리 변화를 보이는 '에이미 던'은 그녀가 이전에 보여주지 못한 강렬한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닉 던'을 맡은 벤 애플랙의 연기가 전체적으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형태이기에 대비되어 더 인상적인 느낌도 존재한다. 이처럼 <나를 찾아줘>의 전반부에 영화를 예측하는 재미가 있다면, 후반부에는 영화에 압도되고 주인공이 되어 보는 재미가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재미는 관점(특히 젠더)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전반에 걸쳐 닉 던의 입장에서 목에 고구마를 잔뜩 집어넣은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에이미 던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녀 안에는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 부부갈등, 여성의 경력단절 등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상 속 어려움이 섬뜩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압된 감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된 것이 문제일 뿐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제목 <She's gone 나를 찾아줘>의 의미가 어느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4. 영화의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 등을 통해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다. <나를 찾아줘>에서도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하는데, 특히 시간 순서를 비틀어 사건을 제시해 사건 간의 감정을 극대화하고 의미를 새로 창출하는 그의 특기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또한 <나를 찾아줘>에서 그는 페이드아웃을 활용한 편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러한 화면 전환은 작중 서스펜스를 유지/창출하며 상당히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의 집중력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특히 <나를 찾아줘>에서 인상적인 것은 '문'을 활용한 연출이다. 문은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나누면서 동시에 매개하는 공간이다. 즉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심리적인 편안함과 불편함 등이 나뉘는 공간인 셈이다. 핀처 감독은 이러한 문의 본질적인 특성을 놓치지 않았다. <나를 찾아줘>에서는 유독 인물들이 문관 문 사이를 두고 대화를 나누거나, 문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거나, 문을 통과하는 씬들이 많다. 이 장면들은 새로운 사건 혹은 반전을 예고하거나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암시하는 역할로 유용하게 활용되며, 데이비드 핀처가 왜 할리우드에서 촉망받는 감독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5. <나를 찾아줘>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닉과 에이미 사이를 설명하고 각인시키려는 인위적인 대사가 다소 많다는 점, 결말부에 현실성이 살짝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결국엔 (특히 한국인 입장에서는) 어디서 본 듯 익숙한 복수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점들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상술한 특징과 장점에 가려지기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사실 <나를 찾아줘>를 보다 보면, 단점을 포착하기 이전에 파괴적인 스토리와 공포스러운 엔딩에 충격받아 어이없이 웃음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먼저 발견할지도 모른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클리셰를 사이에 둔 관객과 감독의 줄다리기. 내 심장을 움켜쥐고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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