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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pr 09. 2019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우주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법칙 = 사랑?

1.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저작 중에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한 커플의 운명적 만남, 낭만적인 연애, 필연적인 듯했던 결혼, 그 후에 따라오는 권태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 등이 다양한 철학적, 사회학적 지식과 이어져 하나의 스토리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 약해지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그렇기에 사랑을 안고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을 스크린으로 구현한다면 아마 <사랑에 대한 모든 것>과 같은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스티븐 호킹의 인생을 훑는 이 영화는 남녀(스티븐과 제인)의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주, 학문, 인류에 대한 사랑과 그 이후까지 품는 작품이다. 



2.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파란만장했던 스티븐의 감정을 한 영화에 전부 다 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춘 시절 일부만 다르지 않을까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이 무색하게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과 제인이 느꼈던 감정들을 조금도 덜지 않고, 또한 결코 과장하지 않고 스크린에 담담히 펼쳐 놓는다. 


학문에 몰두하는 스티븐의 호기심과 성취감. 

질병과 죽음을 선고받는 스티븐의 절망. 그런 그를 바라보는 제인의 슬픔과 오기.

결혼과 출산을 함께하는 스티븐과 제인의 행복함. 

그와 대비되는 스티븐의 외로움과 고독함. 그를 향한 제인의 안쓰러움. 

커가는 아이들과 병세가 악화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커지는 책임감, 반대로 커져만 가는 오해와 답답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죄책감, 의심받는 것에 대한 분노, 죄책감, 애틋함.

병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스티븐의 회한까지. 


영화 속 스티븐과 제인 호킹의 경험과 감정은 시간 순으로 전해지며, 보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감흥을 일깨운다. 애써 사랑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 아마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는 책을 떠올렸던 것 같다. 


감정들이 적절히 전달된 데에는 배우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특히 에디 레드메인의 경우, 얼굴 근육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눈빛과 눈의 움직임 만으로도 스티븐 호킹의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그가 의사로부터 병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에디 레드메인 덕분이다(물론 연출, 카메라, 편집, 조명 등 모든 요소들이 훌륭한 장면이기도 하다). 상대역인 제인의 펠리시아 존스는 누구와 함께해도 케미스트리를 뿜어내는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3.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호킹이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던 1962년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는 1989년까지 약 30여 년의 시간을 다루는 영화다. 이러한 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사건들을 취사선택해서 영화 속에 배치할지,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화면이 바뀌게 될 지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영화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가장 영리한 선택을 했다. 이 영화는 '색이 바랜 사진을 보는 듯한 씬' 혹은 '스티븐이 좌절하는 모습의 씬들'을 통해 주요 사건 사이의 시간을 압축시켜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씬 직후에 화면이 페이드 아웃되면서 영화는 다른 시간대로 넘어간다. 이러한 편집은 인물들의 감정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다음 장면까지 감정선을 유지시키도 하며, 비록 화려하거나 참신하지는 않지만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4.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The Theory of Everything>으로, 번역하면 '모든 것의 법칙'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실 원제와 번제는 의미의 차이가 큰 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놀랍게도 서로 다른 두 제목이 결국 같은 의미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 연구에서 뛰어난 진전을 보인 물리학자이며 이러한 그의 연구 경향은 영화 속에서도 훌륭히 재현되어 있다. 영화 후반부에 호킹은 이러한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집필한 <시간의 역사> 출판 후 회견장에서 신을 믿지 않는다면 신을 대신하는 삶의 철학 혹은 법칙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본다고 대답한다. 이 장면 직후 그가 제인과 함께 대영제국 훈장을 받고 제인을 처음 만나던 순간으로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는 장면이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결말부 시퀀스를 통해 스티븐이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블랙홀과 시간에 대한 그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그의 능력을 발휘하 수 있도록 한 힘이 '사랑'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설사 호킹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찾아내고자 했던 우주를 설명하는 단 한 가지 법칙, 그것이 사랑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서로 다른 제목이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었다. 사랑, 그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힘이며 이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하나의 우주다. 



E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이라는 관념의 낭만과 무게가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경험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 영화의 여운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다. 광활한 우주와 그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형형색색의 성운들은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스티븐과 제인의 이야기와 이 이야기를 담아낸 제작진의 열정에 감동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티븐 윌리엄 호킹 

Steven William Hawking 

1942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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