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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12. 2019

<82년생 김지영> & <밀크 앤 허니>

여성의 언어로 쓰는 인간

1.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작품이다.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대목은 여성들에게 선택의 자유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 작품 속 김지영은 누군가의 엄마, 언니, 누나, 여동생이다. 과거에는 남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현재에는 육아, 결혼, 출산 때문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과 선택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수많은 익명의 여성들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은 특수성의 보편화를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영리한 작품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겪는 불합리한 대우만큼이나 관심이 갔던 것은 이러한 여성들의 실상을 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지 였다.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은 우리 사회가 젠더 이슈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지영은 여전히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다. 이는 곧 그녀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으며 그 끝이 요원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김지영 씨를 진료하는 정신과 의사의 태도다. 그는 퇴사하는 여직원을 보면서 다음 직원으로는 출산이나 육아 문제가 없는 사람을 채용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김지영 씨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에 시달리는지 알면서, 그 원인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알면서 저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물론 일정 수준의 과장이 섞였겠지만) 소름 돋는 부분이다.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고,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또 한 번의 논란이 생기겠지만 우리 사회가 여성의 언어에,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을 여전히 어색하게 느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다면 과연 누가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2. <밀크 앤 허니>는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성과 인간에 대한 사유가 담긴 시집으로, 저자인 루피 카우르는 사랑, 섹스, 상실, 학대, 트라우마, 젠더를 여성의 언어로 짧지만 강하게 전달한다. 여성이기에, 여성만이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드러내고, 남성과의 대립과 갈등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다른 사유를 추구한다. 사랑과 상실, 이별과 트라우마 끝에 치유로서 <밀크 앤 허니>는 여성이기에 앞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 '본래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향유하고자 하는 평범함으로의 회귀를 추구한다. 단지 그 평범함이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고, 그 답답함을(누군가에게는 낯설기만 한) 여성의 시점, 여성의 관점, 여성의 언어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것은 시를 통한
생존기
이것은 스물한 해 동안 흘린
피와 땀과 눈물
이것은 당신 손에 담긴
내 마음
이것은
상처
사랑
이별
치유



3. 누구나 아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두 성은 분명히 다르다. 또한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는 사회와 마주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다르고, 각자의 경험을 풀어내는 언어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 하나가 우월하고 다른 하나가 열등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도덕적,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다른 것은 상호 간에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양립하려는 시도가 필요할 뿐이다. 


그럼에도 여성의 언어, 여성의 시각, 여성들의 도전을 두려워한다면 무엇이 두려워서일까. 이 세상 모든 엄마, 누나, 언니, 여동생, 여자친구, 여사친, 여성은 자신들이 보고 듣는 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일까. 스스로의 치부를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일 뿐이다.


매번 당신은
사랑해서
소리 지른 거라고
말하지만
그건 당신 딸에게
분노를 사랑이라
가르치는 꼴 
장차 당신 딸이
아버지와 꼭 닮았다는 이유로
상처 주는 남자를 믿는
여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좋은 방법
같긴 해

-딸을 둔 아버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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