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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Dec 16. 2018

러빙 빈센트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헌사


1. <러빙 빈센트>는 포스터에서부터 느껴지듯이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고흐의 죽음 이후에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의문들을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로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2.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당연히 작화다. <러빙 빈센트>는 125명의 화가들이 직접 유화로 그린 그림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이다. 거친 붓터치와 다양한 선들과 색감의 향연으로 무장한 그림들은 숱한 고흐의 명작들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영화 중간중간에 '가셰 의사의 초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 '노란 집', '자화상' 등이 지나치는데 이러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고흐의 화풍을 재현한 이 작화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작품이니 만큼 거친 질감의 그림이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3. 하지만 익숙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화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드라마는 아쉬움이 크다. 아쉬운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스토리 전개가 예측 가능하며 상당히 평이하다는 점이다. 고희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제시된 여러 가설들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는데, 이 역시 초반부에 제시한 암시에 비해선 결말이 평범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아쉬움인데, 작중에서 고흐는 과거 회상 장면에만 잠깐씩 등장하기에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고흐의 비중을 더 높여서 고흐의 삶과 예술관을 고흐 스타일의 그림으로 풀어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어쩔 수 없이 남는 대목이다.  



4. 아쉬움도 존재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은, 그림을 자신의 삶의 전부로 생각했던 고흐의 진심이 전달되는 영화이자 화려한 그림 속에 몸을 풍덩 맡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 (Exceeds Expectations)

담담한 열정으로 기록한 헌사



여담으로, <러빙 빈센트>를 보면서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고흐가 형제인 테오와 나눈 편지들을 정리한 책인데 고흐의 생각과 인생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다. 인생을 그림과 동일시한 고흐의 열정이 가장 잘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

본의 아니게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정말이지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면,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1890년 7월, 빈센트 반 고흐가 테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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