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May 26. 2019

어린 왕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싫어질 때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1.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분을 표현하라 할 때 위의 문구처럼 잘 들어맞는 문장을 찾기도 어렵다.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이 표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소중함, 그 관계에서부터 느끼는 애정과 행복을 간결하지만 멋지게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 대사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닌, 여우와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사는 곳은 역시 외롭지


2. <어린 왕자> 속 뱀은 수수께끼로 대화하는 존재다. 그는 지구, 사막에 도착한 어린 왕자가 왜 이리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 말에 이리 대답한다. 사람이 사는 곳은 외로운 공간이라고...


선문답 같지만, 뱀의 저 한 마디는 앞선 모든 어린 왕자의 여행을 요약해주는 말이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오기 전까지 참된 관계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장소만, 관계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만 만났기 때문이다.


별을 떠난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오기 전에 왕, 허영꾼, 장사꾼,  지리학자, 술꾼을 만나지만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 사실 이는 당연하다. 왕은 권력, 허영꾼은 인기, 장사꾼은 돈과 소유욕, 지리학자는 유용성 그리고 술꾼은 망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과 참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도 외로울 수밖에 없다. 또 그렇기에 어린 왕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고? 그는 순수하게 세상을 길들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어른들은 참 이상해


3. 서 홀로 살아가던 어린 왕자가 어느 날 장미 한 송이를 만난 후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 장미를 사랑하면서도, 장미에게 화도 내고, 그러는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도 하는 이유. 그 이유는 어린 왕자가 '관계'의 의미를 모르면서도 세상의 모든 대상과 온전히, 순수한, 전인적 관계를 맺을 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장미 한 송이로부터 품게 된 의문을, 지구에 도착해 뱀과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해소하며 자신이 장미 한 송이와 서로에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자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각 이전이나 이후나 어린 왕자는 여전히 순수하다. 그는 '나'의 그림에서 모자가 아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볼 줄 알고, 여우와 슬픈 이별처럼 다시 한번 이별을 할 것을 알면서도 '나'와 친구가 되며, 이별의 슬픔을 애써 피하지 않는다. 한번 길들이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시선에서 어른들은 '이상'한 존재다. 만나고 헤어지고,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그들은 그 중간에 자꾸만 이상한 것들을 끼워 넣는 걸까? 왜 그들은 서로에게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까? 여우처럼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어도 그것이 나를 길들이고, 내가 그것을 길들이면 이 세상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데 그들은 왜 항상 특별하고 독특한 것(또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은데)만을 쫓으려 할까? 한 번 손에 넣은 것은 자신의 별을 망가뜨리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할까? 그저 자신과 세상, 있는 그대로의 그 두 가지를 바라볼 줄 안다면 인생은 특별할 텐데. 



4. 가끔은 인생에 슬럼프가 올 때가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속한 집단, 우리 가족, 내가 처해 있는 환경, 내 신체조건...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싫증 나고 짜증 날 때가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후회하고,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환경과 조건을 만든 사람을(때로는 사람보다 더 높은 누군가) 탓하기도 한다. 나와 내 주변의 것들이 상상하고 그려왔던 것보다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는 점에 낙담하기도 한다. 나와 세상 사이에 이러저러한 조건들이 달라붙고 그 조건들을 욕심내다 보면 나는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리고 나는 나의 우주에서 혼자 남는다. 이런 기분을 사람들은 외로움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외로울 때면, 세상을 보는 안경에 이물질이 자꾸만 낀다면 그땐 <어린 왕자>를 펼쳐보자. 심심한 희망 섞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저 내가 어떻게 길들이냐의 문제일 뿐,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니.  


하늘을 바라보라. 그리고 마음속으로 물어보라. 양이 그 꽃을 먹었을까, 먹지 않았을까? 그러면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내게 특별해지는 것은 내가 아무리 작은 세상이어도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이 명제를 잊어버린다...






작가의 이전글 모스크바의 신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