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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시호 Jan 17. 2019

차차로 혹은 단통에

신년 결심, 뽷!

작곡가들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좀 보셨다면, 이런 표현 많이 만나셨을 겁니다. 초기 작품, 중기 작품, 말기, 완숙기, 어쩌구주의 시기 웅앵웅.


이런 시기 구분은 사실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반론의 여지는 무수히 존재하고요. 사료만 정확하다면 작곡가들이 활동한 지역을 시기 이름으로 붙이는 것이 그나마 명확할 겁니다. 가령 이런 거죠. “나 그 옷 어렸을 때 산 거야~” 보다는 “나 그 옷 중학교 다닐 때 산 거야” 같은 게 명확한 것처럼. 물론 유의미성은 별개일 테지만요.


뭐 초기 중기 말기라고 해도 활동기간의 0~1/3, 2/3, 이딴 식으로 잘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의 공부와 연구와 합의를 통해 어찌어찌 합리적으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후적인 것이라 한들(아니 솔직히 시기 구분 치고 사후적 아닌 것이 어디 있음) 설득력을 갖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구분과 근거가 꽤 구조적이고 나름의 명확성을 가질 경우, 모르는 곡을 듣더라도 그 작곡가의 어느 시기 즈음 작품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고요. 작곡과 학생들이라면 그런 놀이도 할 수 있겠죠. 어떤 선율을 그 작곡가의 초기 스타일로, 중기 스타일로, 후기 스타일로 변주하기! 


아무튼 어떤 추상적인 것들(이를테면 시간) 등을 특정 기준에 따라 분절하는 것은 인식의 기본이니까요, 이런 범주화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스타일, 그러니까 ‘양식’은 어느 정도 그 구분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것이 텍스트 자체로 명명백백 클리어한 것은 아니어서, 작곡가의 양식이 시나브로 변하는 경우에는, 곡 자체가 아닌 다른 요인들을 시대 구분에 참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후원자라든지, 거주지라든지, 등등.


그런데 뽷! 하고 구분이 되어버리는! 케이스가 몇 있습니다. 가령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사용할 것이다!” 하고 천명한 뒤 쓴 곡은 그의 다른 무조음악, 표현주의 시기 곡과 구분이 분명하게 지어집니다. 사실 그냥 듣는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음악 이론 및 분석을 학습한 사람의 경우에는 악보를 보고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표현주의 작품인 <Pierrot Linaire(달에 홀린 삐에로)> Op.21 가운데 제8곡 Nacht(밤)
소위 "쇤베르크의 무조 시기, 표현주의 시기" 작품.


12음기법 작품 <피아노 모음곡>, Op.25 가운데 Präludium(전주곡)
소위 "쇤베르크의 12음기법 시기" 작품.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그거슨 기분탓


그런가 하면 듣기만 해도 뽜! 하고 구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가 그것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적인 두 시기의 발레곡을 들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8'00"~
원시주의 작품 <The Rite of Spring>(1913) 가운데 Dance of the Adolescents(청춘 남녀들의 춤)
소위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이자 원시주의 시기 작품"


2'43"~
신고전주의 작품 <풀치넬라> (1920) 서곡
소위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시기" 작품


서양 음악의 역사를 몇 가지 덩어리로 구분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사실 그 이름 자체도 어떤 것은 양식을, 어떤 것은 시대를, 어떤 것은 당대 유행했던 사조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서 다소(사실 몹시) 불편하지만 그것은 관습적으로 사용해 온 것이기도 하니 넘어갑시다. (그런 불편한 분류법은 이미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단련이 되어있다 하하하) 이렇게 시대와 사조가 묘하게 밍글 된 이 몇 개의 덩어리들 안에 욱여넣어지기 위해 가엾게 희생되는 작곡가나 작품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근대적 인식의 기본이니까, 당위를 차치하고 최소한 현상적으로 그러하니까, 넘어갑시다. 하지만 너무도 복합적인 분류 체계를 통해서 사후적으로 분류되느라 때로는 엄청난 비약이 이루어질 수 밖에는 없고, 그래서 베토벤이 어느 시대 작곡가인지를 묻는 오지선다 시험 문항에서 고전과 낭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틀린 한 아이는 이후에 음악대학에 진학한 뒤 교사를 찾아 뒤늦은 소송을 걸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 학생이 있다면 부디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법에 흥미를 느끼고 로스쿨 진학을 준비해라!!!! 음대에서 도망쳐!!!!)


그런데 자신이 작곡한 음악의 사조를 자신이! (남들이 아니고!) 사전에! (사후가 아니고!) 선언적으로다가 이름 붙인 경우가 둘 있으니(그 이상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음악사 책에 기록된 것 기준으로) 앞서 언급한 쇤베르크의 12음기법, 그리고 몬테베르디의 제2작법입니다.


몬테베르디는 자신의 마드리갈곡집 제5집의 서문에서 "꼰대들아 나는 이번 곡집에서부터 너네처럼 음악이 먼저고 가사가 서브인 그런 음악, 일명 프리마 프라티카(제1작법) 말고, 오져버리는 선율로다가 가사에 담긴 정감을 쌈빡하게 표현해서 뭐랄까 가사가 음악을 지배하게 만드는 그런 작법으로 음악을 쓸 거임 그리고 난 이걸 일명 세콘다 프라티카(제2작법)이라고 부를 거다"라고 쓰면서 자신의 세콘다 프라티카의 분기점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쇤베르크 역시 "나는 지금부터 전통 화성을 와해시키는데 그치는 무조음악이 아니라,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인 12음기법을 쓰겠다 게다가 이거 내가 만들었지롱 뽷!" 하면서 자신의 음악에 칼같은 시기 구분을 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제자에게 "내가 고안한 이 기법이 완전 짱짱이고 앞으로 백 년은 먹어줄 것"이라는 호기로운 이야기를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그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쇤베르크와 그의 크루들의 작품은 20세기 음악사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절반의 성공...?


아무튼 이 얼마나 쌈빡합니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신년 계획을 세움에 있어 점진적으로.. 점차.. 술을 조금씩 줄이기.. 건강해지기.. 이런 거 말고 대차게 쌈빡하게! 단번에! 마! 내가 마! 새해부터는 마 운동을 주 3회 뽷 나간다!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 너낌으로다가! 세우자는 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권장하는 척 실은 스스로가 다짐을 하기 위함입니다. 신년에는! 그즈음부터 몸짱 시기.. 가 아니라, 2019년부터 몸짱이기 시작했다(?)는, 이런 비문마저 용서될 만큼 쌈빡한 시기 구분을 할 수 있도록 매일 운동(최소 스트레칭)을 하겠습니다. 신년에는! 내가 그즈음부터 육식을 삼가려고 애썼지 아마...? 이런 거 말고, 나는 2019년부터 페스코 베지터리안을 지향했다! 이렇게 깔꼼한 시기 구분을 할 수 있도록 고기를 안 먹겠습니다! 아 자신 없어... 고기 먹는 날은 일 년의 절반 이하로 제한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매거진 발행의 턴을 빌려 안물 안궁의 신년 계획을 공표하는 것은.. 지금이 연초이고 저는 연초의 무드를 오래 가지고 가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연말은 흥겹고 연초는 설렙니다. 아직도 집에 뻗쳐둔 크리스마스트리 덕분에 이 두 감정이 오버랩되어 지금 살짝 하이퍼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모두 저와 함께 쌈빡하기 그지없는 신년 계획을 세워보아요!!!!! 그 모든 계획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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