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시호 Jan 31. 2019

라벨과 차민혁의 같지만 같지 않은

본격 SKY 캐슬 헌정 4부작 <2>

수능 금지곡이라는 음악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빛나는) 샤이니의 링딩동, 더블에스501의 U R MAN(일명 암욜맨), CM송인 오로나민*, 야놀*, 뭐 이런 음악들이 언급되는데요, 모두 길지 않은 특정 부분이 반복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반복은 다른 데 집중하는 걸 방해합니다. 어떤 관점으로는 중독된다고도 할 수 있지만(샤이니에게 중독되어버림) 많은 경우에 짧고 단순한 음악의 반복이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게 할 수도 있는지는 마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떠올려도 알 수 있습니다. “해피해피해피 *마트~”나 “*플러스 플러스 가격이 착해” 이런 음악을 무한 반복해서 사람이 장보다 말고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제 기업인 코스트*의 쁘락치가 숨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수 밖에는 없으니까요.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서 이런 반복 이야기를 하기 가장 좋은 음악은 아마도 라벨의 <볼레로> 일 겁니다. 같은 리듬을 공유하는 두 개의 메인 선율이 무한(으로 느껴질 만큼) 반복되는 이 곡. 그런데! 놀랍게도!! 타이어가 신발보다 싸다는 사실보다 훨씬 놀랍게도!!! 선율의 반복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두 번씩 반복되는 두 개의 메인 선율은 반복될 때마다 각각 솔로 (혹은 솔리)를 바꾸어 가면서 변화를 줍니다. 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솔로와 솔리가 변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악기의 수가 늘어나며 볼륨도 점강 되는 구조기 때문에 어떤 면으로 보나 자극의 강도는 강해집니다. 솔로 악기의 수가 늘어나면서는 단지 유니즌 하거나 옥타브 더블링 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터벌로(섹션 9의 피콜로가 연주하는 완전5도라든지) 화음을 쌓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거칠게 말해 점점 ‘다이내믹’해집니다. 그래서 볼레로는 ‘같은 선율 다른 음색’, ‘반복과 점강의 공존’ 뭐 이런 키워드로 표현되곤 하죠. (아니라면.. 제가 그냥 그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이 곡이 요즘 세젤잼 드라마 <SKY 캐슬>의 삽입곡으로 새삼 핫합니다. 음감님이 열일하시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클래식 음악들이 나오는데 드덕들에게, 혹은 일반 시청자들에게 그 음악의 사용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회자되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음악의 효과를 방증합니다. 슈베르트의 <마왕>도 쓰앵님의 메인테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고요. 독서토론 모임 옴파로스가 해체되던 순간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모차르트 레퀴엠의 <라크리모사>는 그것이 차교수에게는 어마어마한 비극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냄과 동시에 ‘기냥 적당히 슬픈 음악도 아니고 무려 장송곡’을 사용했다는 면에서 적당한 거리 둠과 반어적 효과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음악이 끝내줬던 이유는 모차르트라서... 모차르트 좀 별로... 내 마음의 별로..... 역시 기발함보다는 퀄러티인 것으로.


다시 볼레로로 돌아가서, 볼레로는 주로 차교수에게 붙습니다. 차민혁은 극 전반에 걸쳐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인물입니다. 기계적이고 강박적인 스네어 리듬 위에서 계속 반복되는 선율만큼 여기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있을까요? 자신의 가부장적 권위가 공고했던 초반부터(억압하기), 승혜좌의 각성과 반란으로 조금 타협의 여지를 보이던 때(제 딴에는 한발 양보하며 달래기), 우주가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되어 있을 때(쌍둥이들에게 공감하는 척 결국 주장 관철하기), 그때도 같은 이야기를 해서 결국 승혜좌에게 이혼 통보를 받고 징라면 매운맛으로 며칠 내내 끼니를 때워야만 했던 시기를 지난 후에도(국밥집에서 제 딴에는 호소하기). 아무튼 마지막 화를 한주 남겨두고도 계속해서 같은 논조를 다양한 톤으로 주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태도가 점강적이지는 않더라도, 그 반복에 대한 주변 인물과 시청자들의 피로도 때문에 마치 볼레로의 전개처럼 점강적으로 느껴지죠. 그만 좀 해 이 자식아


다른 관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매번 다른 뉘앙스로 다가옵니다. 초반에는 정말 죽여버리고 싶은 꼰대의 뉘앙스로 분노를 유발했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웃기기도 하고(작감의 의도적 희화화 덕분에) 짠하기도 하고(인간이라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일말의 동정심 덕분에) 등등, 같은 선율이 반복되어도 매번 다르게 들리는 볼레로처럼 말이죠. 같지만 같지 않은 차민혁의 주장. 지구는 둥근데 왜 피라미드야!!!!!


종방을 하루 남겨두고 열혈 시청자의 입장에서, 서사의 중심이 되어온 아갈미향과 쓰앵님의 이야기만큼이나 차교수 가족의 결말도 궁금합니다. 마지막 섹션인 18번째 섹션에서 곡은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전조를 합니다. C장조를 관철해 온 곡은 갑자기 E장조에서 연주되죠. 그것을 일종의 암시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시금 C장조로 돌아와, 차교수가 새로 들여온 초대형 피라미드처럼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이고 압도적인 사운드를 만들고 끝나는 것처럼, 끝내 같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별명과 같이 파국을 맞이할까요? 그 결말이 어떻든, 클래식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현대적 서사의 배경음악으로서의 잠재력이 한층 조명된 것만으로도 음악밥 먹는 사람은 기부니가 좋습니다. 음감님 부디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저 또한 그런 인생을 꿈꿉니다. 그게 피라미드 꼭대기죠 뭐.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이 음악, 여러 영상 중에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영상을 링크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으로 게르기예프에게 약간 초반부의 차민혁 캐릭터처럼 강압적인 분위기를 느끼기 때무네... 저 이쑤시개 같은 지휘봉으로 단원들의 손톱 밑을 찔러 고문해가면서 저 완벽한 연주를 만들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

Maurice Ravel, Bolero Op.81
Cond. Valery Gergiev, London Symphony Orchestra



<SKY 캐슬> 삽입곡에 대한 다른 글이 여기 있어요 : ) 



매거진의 이전글 슈베르트의 <마왕>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은 파국이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