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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r 07. 2021

미지의 습관들

알고 있지만, 왜 생겼는지 모를

©️EZ(AVEC STUDIO)



“아니 나는 그런 적 없다니까!”라는 말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자각하지 못 한 습관을 누군가 발견하고 얘기해 줬는데 하필이면 그 습관이 티셔츠를 들어 올려 코를 닦는 거라니. 당연히 집이었다. 집에서만 입는 목이 다 늘어진 티셔츠. 황당했다. “아니 나는 그럴 리가 없다니까. 아니 진짜 아니라고.” 무의미한 문장만 반복하다가 언성이 높아졌는데 며칠 뒤, 내가 코를 닦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황당했다. 아니 진짜였어? 내가 본 게 사실이었다고?


아래 습관들은 내가 발견한 것도 있고, 코를 닦은 것처럼 누구가 말해준 것도 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습관은 강력하게 부정한다. 부정했던 습관을 알아차렸을 때 느끼는 황당함과 민망함은 온전히 내 몫이다. “미안, 나 정말 그런 습관 있었네.” 사과는 덤인데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를 정리해봤다. 대부분 무의식일 때, 집중했을 때 하는 행동들이다. 뭐 다들 이런 습관 하나씩은 있지 않나.




왼쪽 두 번째 손가락 두 번째 관절을 깨물기 (나)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알고 있지만, 언제,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답을 내야 하는데 답을 모를 때나 초조할 때 조금씩 깨문다. 왼쪽 팔꿈치는 책상에 고인 채 말이다. 손톱을 문 적은 없는데 손톱을 무는 것과 다를 게 있나.



오른발목 뒤쪽을 왼발목 앞쪽에 올려놓기 (나)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왼쪽 발목이 아프다. 이유가 있다. 오른쪽 발목이 누르고 있기 때문. 의식하지 않으면 오른발목은 제멋대로 허락 없이 왼발목을 압박한다. 요가할 때 발목에서 뚝- 뚝- 꺾이는 소리의 이유가 이 습관 때문일지도.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잡고 정수리에 올리기 (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 오른손은 마우스를 왼손은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잡아 들어 올린다. 지금은 단발머리라 할 수 없지만, 긴 머리일 때는 어김없이 하는 행동이다. 더운 여름이라면 특히나 더.



숨을 참기 (나)

설거지할 때의 유일한 습관이다. 그릇의 절반 정도를 치웠을 때 숨이 턱 막힌다. 당연하지. 숨을 안 쉬고 있었으니까. 습관이 무섭다는 말이 맞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려고 하는데 까먹는다. 요가에서 들숨과 날숨 중 들숨이 힘든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 (이유를 찾는 것도 습관인가)



입을 벌리기 (누군가)

이십 대 초반인가. 중반인가. 버스에 함께 탔던 친구가 놀렸던 기억이 있다. “너 왜 입 벌리고 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벌린 줄도 몰랐거든.



두 팔을 위로 뻗어 만세 하기 (누군가)

아주 오래전 TV에서 ‘뱃살! 이렇게 뺀다!’식의 아침방송을 봤다. 50대 일반인이 본인의 뱃살 다이어트 노하우를 공유했는데 바로 누워서 양팔을 머리 위로, 양다리를 아래로 쭉쭉 뻗은 상태를 20분 이상 유지하면 뱃살이 빠진다는 거다. 먹는 양과 활동 반경에 비해 뱃살은 덜 찌는 편인데 세상에 내가 잘 때 쭉쭉 뻗어 잔다는 걸 알았다. 그 사람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나. 이게 아닌가. (의미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호흡법이 중요한데 그 법칙만 지키면 어느 정도 에너지 소비가 된다고 한다.)



티셔츠를 올려 콧물 닦기 (누군가)

문제의 습관. 부정하고 싶다. 코흘리개 어린이나 할 법한 습관이 내 습관이라니. 이걸 지금까지 몰랐다니. 이런저런 생각은 모두 아무 데나 꽂아 놓고 고칠 방법만 찾는다.



사진 정은지 (AVEC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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