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니홈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진철 Sep 15. 2018

에어팟을 잃어버렸다


집에 돌아오면서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있어야 할 무언가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나는 에어팟 충전케이스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시간은 밤 열두시. 아까 버스에서 내릴 때 지갑을 꺼내면서 같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버스 앱에 내가 탄 버스 번호가 나온다. 내일 아침 전화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차고지로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한데요, 유실물 건으로 전화드렸습니다’ 무심한 목소리로 차가 도착하면 확인해볼테니 내일 다시 연락달라고 한다. 느낌이 좋질 않다.


네이버에 ‘에어팟 충전케이스 구매’를 검색해본다. 가격은 89,000원. 그것도 영수증과 일련번호를 알아야만 구매가 가능하단다. 난데없이 10만원이 날아가게 된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원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뭔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두 달 전에는 점심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나갔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모든 카드를 재발급하고 난 뒤에야 사무실 한구석에서 지갑을 되찾았다. 정확히 한 달 뒤 다시 한번 지갑을 잃어버렸다. 술먹고 집에 가는 길에 벤치에 앉아 통화하다가 먹던 바나나우유랑 같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번처럼 집이나 사무실에 있을거라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결국 모든 카드를 재발급해야했다. 2주 뒤 경찰서에서 지갑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현금은 싹 비워져 있었다. 또 한 번은 버스에서 에어팟으로 통화를 하다가 핸드폰을 자리에 두고 내리려다가 선량한 시민의 도움으로 하차 전에 찾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두 달 안에 벌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분명히 어느 포인트에서 정신줄을 놓고 지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신경쓸 일들은 많은데 나는 멀티태스킹에 강한 사람은 아니라 운영체제가 뭔가 혼란을 겪는 것 같다.


찜찜한 마음으로 양치를 하고 나오다가 문득 혹시 버스정류장에 떨어져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 집을 나섰다. 바닥을 보면서 걷는 와중에도 9월의 새벽 세시 반은 산책하기에 정말 완벽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케이스를 찾았다면 더욱 완벽했을 텐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집을 잃어버린 에어팟 한 쌍을 책상 위에 나란히 두었다. 내일은 일어나서 차고지에 다시한번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