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락하기 위한 구실로 연말연초만한 게 없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모임을 불문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역시 ‘나 너무 나이먹었어.’ 나이 얘기는 한국인에게 스포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스물 여섯을 만나든, 서른 여덟을 만나든 같은 소릴 듣고 있노라면 이게 뭔가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은 프로젝트 디자인을 담당해주시는 실장님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근처에서 미팅할 일이 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 비었다며 연락을 주셨다. 메일은 많이 주고받았으나 실제 만남은 예전에 잠깐 뵌 게 전부였다. 무슨 말을 하면서 밥을 먹을까 잠깐 고민했으나 이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실장님은 다정하신 분이었다. 최근 다녀온 전시 얘기로 시작해 예전 공연업계에서 일하신 얘기, 신카이 마코토와 이승환을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지나 주제가 나이로 넘어갔다.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본인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지고, 서른 일곱에 했던 연애가 가장 재밌었으며, 마흔 넘어 결혼을 하고서 남편과 영화데이트를 하는 게 좋으시다고. 나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말씀 그대로가 진심이고 또 진실이라고도 생각한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믿는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나이가 너무 많다고 믿는다면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