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의 소격동 나들이
연휴 삼일 차가 되니 집에 있는 것도 답답했다.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무작정 집을 나와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뒤샹전이 열린다는 얘기가 마침 생각났다. 뒤샹에 대해 아는 거라곤 소변기 하나뿐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방점은 뒤샹이 아니라 미술관이었다. 희고 트인, 조용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했다.
유튜브와 팟캐스트에 ‘뒤샹’을 검색했다. 벼락치기라도 하고 보지 않으면 정말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작품 속 섹슈얼리티가 어쩌구 하는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했다. 설 연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빈 물품보관함을 겨우 찾아 가방을 넣고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했다.
마르셀 뒤샹은 프랑스 출신의 현대미술가다. 소변기, 자전거 바퀴 등 기성품을 이용한 레디메이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레디메이드 스타일을 보이기 전 그는 입체파 양식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피카소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이번 뒤샹전에도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등 그의 대표작들이 소개되어 있다. 구글 아트앤컬쳐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그의 대표작인 <샘>, <자전거 바퀴> 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관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실 정말 유리관에 넣은 소변기였기 때문에 이걸 너무 진지하게 쳐다보기도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내게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가 전업 체스선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말 진지하게 체스에 몰두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휴대용 체스판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 프랑스 신문사에서는 현대미술가 뒤샹이 아닌 ‘체스기사 뒤샹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현대미술가로 기억하고 하겠으나, 그가 실제 살면서 가졌던 정체성의 큰 부분이 바로 체스 플레이어였다는 차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입구 부근 소품샵에 걸린 포스터들을 보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보다 날이 추워 목도리를 꼭 둘러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