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넷마블에 테트리스를 참 재밌게 했었다. 여러 모양의 블록을 쌓고 쌓아 한 줄의 빈 공간을 만들어, 막대 모양의 블록을 내리꽂을 때 줄어드는 블록 더미를 보면 쾌감을 느꼈다. 그렇게 빈 공간을 만들어 한 번에 여러 줄을 없애는 것이, 한 줄 쌓아 바로 없애는 것보다 어려웠지만 재밌었다.
여러 종류의 글들을 보며 테트리스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정합적으로 짜여진 글들을 보면 내 생각을 투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저자의 틈새 없는 논리, 그리고 그 논리를 지탱해주는 다양한 근거들을 보면 반론을 제기하거나 비판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해당 분야에 대해 저자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거나, 그 이상의 수준이 아닌 이상 틈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 이런 글들에 대해서 나는 수긍해버리고 만다.
반면, 여백이 있는 글들을 보면 내 생각이 자연스레 투입된다. 여백이란 논리의 빈틈이 아니라, 생각의 여운을 남기는 글들, 또는 고도의 추상성이나 행간이 넓은 글들이다. 테트리스의 막대 블록을 내리꽂을 때만큼이나 내 생각을 넣을 공간이 있는 글을 마주할 때면 설레곤 한다. 그런 글을 읽는 며칠 밤낮은 머리가 바쁘고, 글의 여운이 잔존하는 몇 일간은 그 느낌을 잊어버릴까 전전긍긍하며 수십 번 상기한다. 그런 글들은 내 생각이 들어가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잊히지 않는 글들은 바로 그런 글들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지식 독서를 추구하던 나도 여운이 남는 글에 더 눈길을 주었다. 유용한 지식으로 가득 찬 글도 좋다만, 그 지식 모두 나의 피와 살이 되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홍수 같은 지식으로 이뤄진 박학다식을 지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 내음을 풍기는 글들을, 가슴에 새겨지는 글들을 나는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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