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우리가 인간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인간에 대한 내적, 외적인 관찰이 동시에 필요하다. 통찰이란 말의 의미는 ‘생활체를 둘러싼 내적, 외적 전체구조를 새로운 시점에서 파악하는 일’이다. 이 사전적 의미처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그 자체를 알아야 하면서 주위를 둘러싸는 세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Bottom-up과 Top-down이다. 소설의 방식은 Bottom-up의 방식이다.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기술에 나간다. 표현하는 방식이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간접적이고 우회적이다.
소설을 통해서도 세상을 파악해 나갈 수 있다. 소설의 그 대척점인 Top-down의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거시적인 시각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기술하는 책들이 있다. 철학, 역사, 사회과학 그리고 최근에 주목받는 미래학, 빅히스토리 같은 장르가 있다.
이 같은 장르는 소설과 다르다. 세상이라는 강에 표류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 장르들은 세상의 구조와 작동 원리, 인간의 본성과 같은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작은 것에서 큰 것, 안에서 밖으로 나아가는 구심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 앞서 말한 주제들은 밖에서 안으로 향한다. 관찰 방식이 원심적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원리가 존재하거나, 세상에 특정 패턴이 있어 인간 사회가 구성되고 작용한다고 결론을 도출한다.
인간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 원심적 관찰과 구심적 관찰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개인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고, 큰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인간 개개인들의 삶의 다양성을 읽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저작이라면, 소설과 비문학을 균형 있게 읽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초점에 근경과 원경의 상이 또렷이 맺힌다.
거시적인 주제의 책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인간에 대해 큰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 큰 시각이란 대부분 ‘인간은 어떻다’라는 전제를 갖고 내용을 전개한다. 예를 들면, 과거 중국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었다. ‘인간은 착하다’ ‘인간은 악하다’라는 가정이다. 두 사상을 기반으로 전혀 다른 내용의 사상이 탄생하였다.
맹자가 주창한 성선설은 유교 사상의 토양이 되었고, 중국, 한국, 일본과 같은 극동 아시아에 통치 이념이 되었다. 반대로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의 사상은 법가 쪽으로 이어졌다. 법가는 제도와 법으로 백성을 통치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스스로 교화가 어렵기 때문에, 제도와 법으로만 통치가 가능하다는 법치주의를 만들었다. 법가 쪽에는 진시황을 도와 처음 천하를 통일한 재상 이사, 제왕학의 고전 <한비자>를 저술한 한비자와 같은 인물을 배출해 내었다.
진시황 이후 한나라 시대에는 이 두 가지 사상을 융화한 외유내법(外儒內法)의 통치술을 구축한다. 밖으로는 유교의 이념을 내세우되, 통치 원리는 법가의 방식을 따른다. 이 통치술은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극동 아시아의 주요 통치 원리가 된다.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 같은 국가의 통치원리나 사상의 기반이 되는 부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생각하는 모든 것은 과거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과거 사건들과 생각들의 합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전제들이 있고 많은 결과물들이 있다. 전제는 양립적인 구조를 취하는 것이 많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생득적이나, 후천적이냐?’ ‘인간의 운명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가, 환경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가?’ ‘동양과 서양을 구분 짓는 가장 큰 문화적 차이는 무엇인가’ ‘농경문화와 유목 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런 책마다 저자가 인간에게 대해 던지는 큰 물음들이 있다. 그들은 그 물음에 대한 자신의 답을 완성시키기 위해 성실하게 자료를 모으고 논리의 이음새를 다듬었을 것이다. 이들의 저작을 읽는 것은 인간을 넓은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강력한 렌즈를 갖는 것이다. 이 렌즈들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