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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일머리를 향상시킨다(1)

1. 일을 잘하는 방법은?

by 썰킴

나는 일 욕심이 있었다. 일을 잘하고 싶었다. 일을 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일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학생 때부터 시간 관리, 프로젝트 관리 기법, 피드백, 메모의 기술, PDCA 사이클과 같은 다양한 기법을 책에서 접하고 시도했었다. 대학원 시절에 책에서 배운 이 기법들을 내게 적용하여 시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사용하고, 일의 진척을 정량적으로 매일 확인했다. 이런 방법은 귀찮았지만 꽤 유용했다.


대학원 졸업 후 첫 직장에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 직무는 제품개발이었다. 회사에서 제품의 설계와 실험을 주로 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회사 생활의 대부분을 보고서 작성하는데 할애하였다. 실험 계획 및 결과 보고부터 시작하여, 최신 논문의 요약, 특허 출원, 기술 동향 파악, 연구 로드맵 수립과 같은 온갖 종류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첫 직장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보고서 작성을 잘하는 사람은 필력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필력보다도 글의 근간이 되는 생각이 더 중요하단 것을 곧 깨달았다.


나는 매일 보고서를 썼다. 파트장, 팀장, 담당 임원, 본부장, 대표이사의 결재라인을 돌파하기 위해선 보고서의 논리가 타당하고 명료하며 설득적이어야 했다. 첫 보고서를 작성하여 결재를 올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의 보고서 초고는 열 번 이상 수정된 후에야 결재가 올라갔다. 그 과정은 이랬다. 파트장이 나의 보고서 초본을 복사하여 읽는다. 그리고 수정할 부분을 펜으로 표시하여 돌려준다. 내가 다시 고쳐 올린다. 그러면 다시 수정할 표시 하여 돌려준다. 그러면 내가 또다시 고쳐 올린다. 이 과정을 보고서가 상사의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했다.


처음에는 이 반복이 무의미하고 시간 소모라 생각했다. 하지만 파트장은 내가 보는 너머의 것들을 생각하며 고쳤다. 그는 팀장의 생각, 담당 임원의 생각, 그리고 본부장의 생각까지 만족시키는 명료한 논리와 타당한 결과 배열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막힘없는 논리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것이다. 일을 잘하기 소문난 파트장의 문장은 유려하지 않았다. 단어 사용 이 다채롭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보고서의 설득력은 충분했다. 문장의 유려함보다도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가 더 중요했다.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적용하여 기계적인 일 처리 속도에는 진전이 있었지만, 일의 질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 처리 방법론도 중요 역량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력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들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력이 없다면 무능한 것이다. 직장인에게 문제 해결능력은 필수 역량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직군이 아니라면 특히 더 그렇다.

그럼 이 문제 해결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 것일까? 문제 해결력은 생각의 힘과 비례한다. 바디 빌딩을 하면 몸에 근육이 붙고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생각의 힘도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 그 훈련이란 바로 능동적 독서다. 책을 눈으로 훑고 끝내지 않고, 읽은 후에는 요약하고 정리하며 독후감과 서평을 쓴다. 아울러, 습득한 것을 다른 지식과 연결하고 실천까지 옮긴다. 말만 기운이 빠지는가?


물론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생각이 자라지 못한다. 몸을 만드는 원리와 똑같다. 몸의 생리와 자신의 특질을 알고, 올바른 방법으로 운동을 한다. 끊임없이 배운 방법대로 운동을 지속한다. 그러면 분명 몸의 변화가 생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스스로 고양되어 자존감이 올라간다. 끈기가 생긴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운동을 지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피트니스 센터가 우후죽순 생겨나도 몸 좋은 사람이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 이유다.


생각의 힘을 기르기 위한 독서도 마찬가지다. 근력이 약하면 작은 중량부터 드는 것처럼 자신의 수준에 적합한 책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앎의 즐거움을 천천히 깨달아 나가며 가속을 붙이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욕심내어 고전이나 중량감 있는 인문서들을 고른다면 금방 지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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