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는 일머리를 향상시킨다(2)

2. 생각의 힘을 키운다.

by 썰킴

나는 일을 잘하기 위해 일과 관련된 자료들을 꾸준히 읽어왔다. 틈틈이 기술 관련 논문들을 검색했고 카테고리 별로 정리하고 활용하였다. 새로 발표된 논문을 받기 위해 Google scholar에서 알람을 설정하여 매일 아침 최신 연구 성과물을 실시간으로 확인했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논문은 퇴근한 후 밤이나, 주말에 카페에 가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읽으면서도 중요한 내용이 있는 부분은 따로 발췌하여 정리하였다. 더불어, 나의 분야에 대한 기술 동향 파악은 나의 업무였기에 외국에서 발행되는 기술 잡지를 구독하고, 때때로 중요 기사들은 스크랩하여 사내에 공유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이 자료들을 몇 시간 동안 읽어내려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구의 흐름이나 현 시장의 주요 사건 및 이슈를 접해도 맥락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읽으면 읽을수록 과거에 읽었던 내용들과 회사에서 보고 들었던 내용들이 연결이 되었다.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 안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료에서 읽은 거시적인 관점과 경험으로 얻은 미시적인 관점을 두루 겸할 수 있었다. 세계시장 안에서 회사의 위상과 평판, 그리고 앞으로 집중해야 기술 분야, 우리 제품의 강점과 단점, 나라와 기후에 따른 제품이 필요한 성능과 개선점과 같은 무수한 정보들과 생각이 연결되었다.


위의 과정들을 매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과 의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재료가 필요했다. 메마른 사막에서 식물들이 자라기 힘든 것처럼, 자신의 지적 토양이 척박하다면 생각이 자라기 힘들다. 자신의 지식 기반을 비옥하게 다지기 위해선, 농작물 키우듯 우리 스스로에게도 꾸준히 새로운 지식을 주입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이 꽃을 맺고 열매가 익듯 지식이 내 안에서 무르익는 시간도 필요하다. 머리에 입력한 정보를 날 것 그대로 갖고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망각한다.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변모의 과정이 필요하다. 오래도록 남을 지식 결정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지식을 오랜 장기 기억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박학다식한 학자들처럼 엄청난 양의 지식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의문을 갖고 여러 책들을 읽어가며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지식을 만드는 과정을 파악해 나갔다.


지식 형성의 과정은 고등학교 시절 화학 시간에 배웠던 상평형 곡선과 흡사했다. 나는 이 과정을 이 상평형 곡선에 빗대어 말하고 싶다. 아래 상평형 곡선을 보자. X축은 온도이고 Y축은 압력이다. 온도와 압력에 따라 물질은 기체, 액체, 고체로 존재한다.


이를 내 머릿속 지식의 변화에 대입해 보자. 기체는 책을 읽은 직후이며, 액체는 책의 내용을 나만의 생각으로 변화시키는 단계, 그리고 고체는 책의 내용이 자신만의 지식 결정으로 응고하여 만든 상태이다. 그리고 각 단계를 전진하게 만드는 힘은 압력이다. 지식의 형성 과정에서 압력이란 생각의 압력이다. 이는 진득하게 골몰하는 힘, 사고의 힘을 말한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처음 읽을 때를 생각해 보라. 저자의 주장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그가 구사하는 단어가 낯설기만 하다. 새벽에 자욱하게 드리운 안개처럼 어떤 구체적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읽거나 대충 통독하였을 때 느낌이 꼭 이러하다. 새벽에 자욱하게 드리우는 댐 주변의 물안개(기체)와 같다.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게 된 후에는 생각의 형태가 보인다. 처음처럼 눈앞이 뿌옇거나 실체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 저자의 생각이 나에게 꼭 맞게 들어온 것은 아니다. 형체는 보이되 변형되거나 흐른다. 아직 내 안에서 어떤 형태로 안착하지 못하고 흐르는 액체 같은 지식이다.


마지막은 응고이다. 아직 액체 상태인 지식에 대해 진득하게 사유하다 보면, 나만의 견해가 생겨나고 의견이 만들어진다. 이 시점에서 지식은 고체로 응고된다. 단단한 지식으로 결정화되는 것이다. 이런 결정화된 지식은 하나의 개별적 덩어리로 보이지만, 다른 지식과 융합됨으로써 그 크기를 불려 나간다. 이 결정화된 지식이야 말로 내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위 내용을 정리하자면, 사라지지 않는 지식을 만드는 방법은 주입, 사색, 출력 이 세 가지가 전부다. 이 세 가지가 한 사이클이 되어 부단히 돌아갈 때 우리의 두뇌는 활성화된다. 머리 안 생각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지식들이 축적되면 생각의 불씨를 더욱 세차게 타게 하는 장작이 된다.


이런 장작이 많을수록 생각의 화력이 더욱 강해지고 나의 지(知)력은 높아진다. 신화상전(薪火相傳)이란 말을 아는가? 땔감은 불타도, 그것을 보충해 주면 그 불씨는 전승된다. 지속적인 독서를 통해 생각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 그리고 불씨의 전승에 만족하지 말고 화력을 높여라. 생각의 화력이 높다면 일에서 어떤 장애물과 문제를 만나도 거뜬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서는 일머리를 향상시킨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