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는 말과 글의 토양이다.
우리 생활에서 글과 말은 중요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글과 말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세상과 연결된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 상사에게 보고할 때, 연인에게 사랑의 말을 전할 때, 편지를 쓸 때, 보고서를 쓸 때, 문자를 쓸 때 말과 글로써 전한다. 이처럼 말과 글은 밥을 먹고 숨을 쉬듯 언제나 사용한다. 인간은 유아 시절 부모의 입모양과 소리를 따라 하며 말을 체득하고, 문자 교육을 통해 쓰고 읽을 수 있는 글을 배운다. 그렇게 익힌 말과 글을 평생 사용한다. 야생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고서야, 말과 글은 우리의 생활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도구로 늘 함께한다.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누구나 말과 글을 쓴다. 모두가 매일 사용하는 말과 글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나뉘게 된다. 그 차이로 말미암아 인생행로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나는 이 차이가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학습의 정도에서 온다고 본다.
환경 측면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부모가 사용하는 어휘를 따라 하며 습득한다. 부모가 풍부하고 다채로운 어휘를 사용한다면 아이가 말하고 쓸 수 있는 어휘도 그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아이가 어린 시절에 다양한 동화책을 육성으로 들려주었다면 이야기의 구조와 맥락 읽는 법을 아이는 자연스레 체득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향후에 말을 조리 있게 잘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부모가 사용하는 어휘가 많지 않고, 아이에게 다양한 맥락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면 앞서 언급했던 아이보다 언어발달이 느릴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학습(學習)이다. 앞의 환경은 아이의 뜻대로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학습은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얼마든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그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 어렸을 적 배움이 다소 부족했더라도, 본인의 의지와 열망에 따라 노력한다면 자신의 글과 말은 얼마든지 향상이 가능하다. 궁벽한 시골 오지에서 자랐을지라도 진득한 독서를 통해 다채로운 어휘와 개념을 습득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학습한 사람이라면 그가 사용하는 말과 글은 전혀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독서라는 행위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말이 있기 전에 생각이 있고, 글이 있기 전에도 생각이 있다. 한 사람이 어떤 사안에 대해 명료하고 타당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의 말과 글 또한 명료하고 타당하다. 이에 더하여 그 생각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어휘와 표현 방식을 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독서는 이 모든 것을 키워준다. 생각의 힘을 키워주며, 단어와 표현 방식을 향상한다. 그래서 독서는 말과 글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밑바탕을 다져준다.
과거 동양 문화권에서는 관리를 뽑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기준이 있었다. 이는 사람을 평가할 때 쓰는 네 가지 기준이다. 첫째로, 인물이 잘났는가. 둘째, 말을 잘할 줄 아는가. 셋째, 글은 잘 쓰는가. 넷째, 판단은 옳은가. 첫 번째 인물의 준수함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는 독서를 통해 키울 수 있는 능력들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신언서판은 여전히 존재한다. 모집 공고에는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묵시적으로 존재한다. 훌륭한 언변, 뛰어난 글솜씨, 그리고 적확한 판단력. 이 모두 기업에서 뽑고자 하는 인재의 요건들이다. 과거에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 박 터지게 책을 읽었다. 외모는 비록 어찌할 수 없었겠지만, 나머지는 독서를 통해 키울 수 있었다. 위에서 열거한 능력들을 독서를 통해 키울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책을 보다 맹렬히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