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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8. 2024

텍스트를 넘어서라(1)

1. 텍스트를 넘어서라

 프랑스의 진화학자 라마르크는 '생물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주장하였다. 사람이 시력을 잃으면 청력과 촉각이 발달하고, 다리를 쓰지 못하면 휠체어를 움직이기 위해 팔의 근력이 증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서 역시 용불용설이다. 독서는 하면 할수록 능숙해진다. 반대로 독서를 하지 않으면 독서 능력은 늘 제자리에 있는다. 독서가 능숙해지면 독해의 수준이 점차 올라간다. 독서 초창기에는 어휘 하나마다 의미를 습득하며 천천히 읽어나간다. 어휘를 충분히 습득하면 문장의 이해가 수월해진다. 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준이 되면 점진적으로 문단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글 읽는 능력이 발달하여 문단 핵심 내용을 종합하여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 책의 각 목차에 담긴 주장의 이해 및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심화시켜 읽으면 저자의 의도, 명제의 이해, 논증의 이해, 논리 구조, 결론 도달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티머 애들러는 <독서의 기술>란 그의 저서에서 독해의 능숙함에 따른 독서 수준을 아래와 같이 구분하고 있다.          

   

제 1수준(초급 독서) : 어휘 및 개념의 인식과 습득, 문맥의 이해 가능

제 2수준(점검 독서) : 책의 분류와 주제 및 구성에 대한 이해 가능

제 3수준(분석 독서) : 정독에 해당하는 독서로 책에 대한 깊은 이해

제 4수준(신토피칼 독서) 

 - 동일 주제에 대하여 여러 책을 읽고 비교, 대조를 통해  이해를 심화 

 - 책에 없는 주제를 스스로 발견

<독서의 기술, 모티머 에들러>     


 모티머 애들러가 제시한 바와 같이 독서가 능숙해질수록 책을 보다 깊이 읽어나갈 수 있다. 독서가 능숙해지는 것은 사람의 뇌가 독서에 최적화됨을 뜻 한다. 독서를 하면 뇌 안의 뉴런들이 독서에 필요한 연결을 만든다. 독서를 시작하는 아이들보다 숙련된 독서가가 읽기가 빠르고 이해가 깊은 것은 뇌 속에 이미 독서에 적합하게 구성된 뉴런들의 연결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책을 볼 때 보다 집중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아이가 단어와 단어 하나를 쪼개 독해한다면, 숙련된 독서가는 한 번의 읽음으로 여러 문장을 동시에 읽으면서 깊게 이해한다. 이미 사고회로가 독서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는 덕분에 아이들처럼 노동집약적 방법으로 내용을 분석할 필요가 없다.   

  

 숙련된 독서가들은 그들이 독서를 시작한 이래로 다양한 책들에서 이야기의 구조, 문장 패턴, 단어들의 의미를 학습하였다. 그들의 뇌는 텍스트를 읽을 때 자동적으로 학습된 패턴을 사용한다. 그들은 이미 습득한 패턴을 사용하여 책을 읽을 때 맥락과 의미 파악이 빠르다. 이와 같이 텍스트를 해독하는 프로세스가 체화된 독서가들이 얻는 선물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그들은 텍스트를 읽음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유추, 추론을 하며 자신의 감정과 삶을 텍스트를 연결한다.      


 이 부분이 독서의 창조적 특성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읽은 내용에 대한 이해 수준의 폭과 깊이에 따라, 작가의 생각이 끝난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생각은 책의 텍스트와 자신의 삶과 지식의 혼융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지금 읽고 있는 텍스트와 결합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독서하는 뇌>의 저자 메리언 울프는 독서를 통한 인간 사고의 창조를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150년 전 찰스 다윈은 창조와 비슷한 원리를 발견했다. 유한의 원리로부터 ‘무한한’ 형태가 진화된다는 것이다. 그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도 아름답고 훌륭한 무한히 많은 형태들이 진화했으며 그 진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지적으로, 독서는 인류로 하여금 ‘주어진 정보를 뛰어넘어’ 너무나도 아름답고 훌륭한 무한히 많은 사고를 창조하게 해 준다.

<독서하는 뇌, 매리언 울프 p.33>


 독서의 궁극은 무엇일까. 하루에 수십 권을 읽어내면서, 읽은 것을 모두 온전히 기억해 내는 것일까? 아니다. 독서의 지향 점은 자신 고유의 생각을 만드는 것이다. 남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을 동력 삼아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다. 정말 독서를 잘하고 싶다면, 텍스트에 매몰되지 말고 텍스트를 넘어서야 한다. 동물도 때가 되면 어미의 젖을 떼고 야생으로 나가 독립한다. 책 또한 자기 사고의 자양분으로 삼아야지, 책에 쓰여 있는 것들 모두가 진리라고 믿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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