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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8. 2024

텍스트를 넘어서라(2)

2. 독서 변화 3단계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 변화 3단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의 정신에 대한 은유로 니체는 낙타, 사자, 아이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각 대상의 특성과 결부시켜 사람의 정신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그가 묘사하는 사람의 정신 단계가 독서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그의 은유를 여기에 빌려 온다.    

 

 첫 째, 낙타의 독서이다. 낙타는 태어나 쓰러지는 순간까지 짐을 지고 살아간다. 낙타의 등에는 언제나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있으며, 낙타의 삶은 주인에 따라 결정된다. 낙타에게는 자유가 없다. 낙타의 속성은 순종과 복종이다. 그럼 낙타의 독서란 무엇일까.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무조건 믿는 것이다. 일말의 질문이나 의구심 없이 보는 독서다. 그 이유는 대체로 저자의 이력이 화려하고, 자신의 분야에 높은 권위 갖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또는 유명하거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일 수도 있다.     


 이러한 유명세, 권위, 지식의 수준과 같은 여타 것들에 압도되어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독서는 언제나 낙타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지식이 얕고, 사고가 깊지 못하다고 해서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말과 가르침에 휘둘려야 하는가. 아니다.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독자적 사고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생각의 힘이 약할 때는 타인의 생각을 흡수해서 나를 키워야 한다. 낙타는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단계이다. 누구나 낙타로 시작한다. 힘을 모아 도약을 꿈꿔야 한다. 시작은 낙타일지언정 낙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단계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둘째, 사자의 독서이다. 사자는 밀림에서 사냥을 하며 자유로이 살아간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쉰다. 낙타와 달리 자유로운 존재다. 모든 행동은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행해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용은 사자에게 말한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 용은 문화적으로, 관습적으로, 권위적으로 종용되고 있는 일정한 틀을 사자에게 강요한다. 사자는 이를 거부하고 이렇게 답한다. “나는 하고자 한다.” 사자는 용이 강요하는 틀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진취적으로 살아가고 자하는 의지를 밝힌다.    

   

 사자의 독서란 주체성 있는 독서이다. 사자의 독서를 하는 사람은 권위 있는 기관의 독서 리스트와 저자의 권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서점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베스트셀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과 관심 분야가 확고하다. 생각도 단단하다. 자신의 길을 알고 있다. 그들은 저자의 생각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가며 저자의 생각에 반박을 하고, 자기의 의견을 보태기도 하며,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며 비교와 대조를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앎의 범위와 깊이를 종적으로 횡적으로 확장시킨다.    

 

 그들의 독서는 낙타와 같은 맹종이 아니다. 유명 저자의 권위를 인정하되 그들의 사고에 매몰되지 않는다. 전복적 사유를 하며 혁명을 꿈꾼다. 누구나 낙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자로 도약할 순 없다. 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다양하게 접하되, 자신의 사유를 강철 단조하듯 단련시켜야 한다. 그래야 주체적인 생각이 솟아 나오고, 자신의 취향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독서다. 아이는 백지장 같다. 새로운 시작을 할 준비를 갖춘 존재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아이는 순진무구한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선한 긍정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니체가 말한 아이에게 주목한 속성은 바로 새로운 시작, 즉 창조성이다.     


 아이의 독서란 새로운 세계의 창조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창조, 그것이 바로 창조의 독서다. 그래서 아이의 독서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모태가 된다. 읽기 안에 창조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창조를 만들어내는 독서 경지는 쉽게 도달하기 어렵다. 반드시 낙타와, 사자의 상태를 거쳐야 한다.     


 종래의 권위에 순응하는 낙타에서 벗어나야 하며, 사자의 단계에서는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 후에야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많은 문인들이 책 읽기의 마지막은 책 쓰기라고 했다. 책 읽기 과정이 옹골찼던 사람들만이 기똥찬 책들을 싸낸다. 싸낸 책들을 보면 저자의 사유 과정과 책 씹기 과정이 훤히 보인다. 이 단계를 건너뛴 사람들의 책들은 얼기설기 엮은 헝겊주머니처럼 느껴진다.     

 

 아이의 독서는 낙타와 사자의 과정을 견실히 견뎌낸 사람들이 나아갈 수 있는 단계이다. 기반이 튼실한 사람들만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창조의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독창적인 주장들과 이론을 전개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슬로 리딩을 통해 책들을 진지하게 읽어온 사람이라면 이 경지 또한 멀지 않았을 것이다. 슬로 리딩을 하며 사유를 단련했다면, 이제야 말로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배출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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