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썰킴 May 18. 2024

곱씹으며 읽기의 효용(1)

1. 소처럼 곱씹어라

 독서법의 비유 중 소처럼 되새김질하라는 비유가 있다. 이는 소가 여물을 먹고 게워내고, 다시 씹는 모습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소화하기 힘든 여물을 잘게 분해하여 위안에 넣고, 위 안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여물을 게워내 다시 씹으며 영양분을 흡수한다. 옛사람들은 소가 여물을 곱씹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공들여 경전을 반복하여 읽던 모습을 생각했던 걸까?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저서 <일침>에는 우작경탄(牛嚼鯨呑)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우작’이란 책을 읽을 때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반복하여 차근차근 음미하는 것을 뜻한다. ‘경탄’이란 고래의 식사법이다. 고래가 물과 함께 새우와 플랑크톤을 삼킨 후 원하는 것만 걸러내는 것이다. 나는 깊이와 너비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 독서법에 찬성한다. 하지만 이 ‘우작’과 ‘경탄’이라는 독서법에 전후가 있고, 중요도의 높고 낮음이 있다 하면 당연히 ‘소의 되새김질’이 ‘고래의 삼키기’보다 앞서고 더 중요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의 되새김질보다 고래의 삼키기에 익숙해져 있다. 요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흥미에 따라 시사, 경제, 문화, 과학의 다양한 블로그와 채널들을 구독하며 매일 보고 듣는다. 다양한 콘텐츠들은 우리의 앎의 범위를 넓혀준다. 이해하기 쉽게 편집도 잘 돼 있다.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비판적 시각의 결여이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콘텐츠 크리에이터들 중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전달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신뢰성 부족한 방송을 지속적으로 들을 경우에 올바른 판단에 해가 된다. 때문에 어떤 콘텐츠를 접하든 비판적 시각이 중요하며 자신의 머리로 반추하여 유익한 부분만을 취사선택하여 흡수하는 게 좋다.     

 제대로 읽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선 좋은 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취해야 한다. 먹는 음식이 자신의 건강을 대변해 준다면 읽은 책의 질과 독서 방법이 나의 지적 세계, 정신력을 대변한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음식물로 체력을 발육케 하고 독서로 정신력을 배양한다.’ 더불어, 그는 명저만을 골라 읽기를 권했다. 명저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정신 상태에 악영향을 준다고 단언하면서.     


 쇼펜하우어의 말은 극단적이지만 일리가 있다. 정신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명저만의 통찰, 단단한 논리, 명징한 사고에서 얻는 바가 일반 서적 수십 권 읽는 것보다 효용이 큰 것을 그는 알았다. 같은 맥락에서 같은 이야기를 한 사람이 더 있다. ‘대물일점호화주의 공부법’을 제창한 사이토 다카시 교수다. 그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대물일점호화주의는 한 가지 가치 있고 질 좋은 것을 집중해서 철저하게 흡수하면 그것이 향후 모든 일의 바탕이 된다는 사고입니다.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일류에 매진하는 편이 낫습니다. 일류는 여러 가지 요소를 포함하므로 그것을 연구하면 높은 수준에 감탄하고 그 세계를 동경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령 이류, 삼류 문학작품은 보면 ‘뭐야, 시시하잖아’하고 실망해 버립니다.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이토 우지다카>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무엇이든 일류를 본 삼아 철저하게 파고드는 공부법을 하라고 권한다. 예를 들면, 일류 작가를 골라 그가 쓴 모든 작품을 읽으라 한다. 그리고 작가의 세계로 침잠하여 그 세계를 공유하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나 역시 많은 작품들을 읽었어왔지만 정작 울림을 주는 작품을 몇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있는 건, 내 존재를 뒤흔든 작품뿐이었다. 그 작품의 다수는 일류가 쓴 대작이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텍스트를 넘어서라(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