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서는 시간을 향기롭게 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저서 <시간의 향기>에는 향시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에서 19세기까지 쓰던 향인(香印)이라는 시계는 향불의 연기로서 시간을 측정하는 물건이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 향기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향인을 사용하는 방법은 한붓그리기가 가능한 문자의 본이 들어가 있는 틀에, 향 가루를 채워 넣고 들어 올린다. 틀을 들어 올리면 향 가루로 된 문자 모양이 남는다. 여기에 불을 붙이면 불꽃이 문자의 문양을 따라 태워가며 재로 화한 부분이 글씨로 나타난다.
시간 측정 수단으로서 향은 많은 점에서 물이나 모래와 구별된다. 향기가 나는 시간은 흐르거나 새어나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향냄새가 공간을 채운다. 향기는 시간을 공간화하고, 그리하여 시간에 지속성의 인상을 준다. 물론 불꽃이 계속해서 향을 재로 만들어버리기는 한다. 하지만 재도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는 글자의 형태로 머물러 있다. 그리하여 향으로 된 인장은 재가 되어서도 그 의미를 전혀 잃어버리지 않는다. 재를 남기며 계속 전진하는 불꽃이 환기할 수도 있는 무상성은 지속성의 느낌에 자리를 내준다.
향인은 정말로 향기를 발산한다. 향냄새는 시간의 향기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도 이 중국 시계는 대단히 정교하다. 향인은 흘러가지도, 새어나가지도 않는 시간의 향기로운 분위기 속에서 때를 알려준다.
<시간의 향기, 한병철>
나는 한병철 교수의 글을 읽고 속으로 말했다. ‘향인도 독서랑 같구나.’ 나는 향인의 모습에서 독서를 떠올렸다. 첫째로, 문자 모양의 향가루를 따라 불꽃이 타들어가는 모습에서, 독자가 작가의 글 길을 따라 읽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둘째로,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모습이 다양한 형상으로 지각되듯, 글을 읽고 다양한 생각이 연기처럼 독자의 머릿속에 피어오름을 상상하였다. 셋째로, 향은 모두 타버렸지만 재는 문자의 형태로 머물러 의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 글을 읽고 난 후 체득한 의미가 독자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있음이 독서와 꼭 같았다.
더불어 향가루가 모두 연소되고도 방안에 가득 차있는 향냄새는, 독서가 우리네 삶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루를 구성하는 다양한 시간 중에, 독서같이 향기로운 시간이 있다는 것은 진정 보배로운 일이다. 진정 삶을 향기롭게 하고 싶다면 독서를 하자. 좋은 책을 골라 느리게 보자. 좋은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취가 나의 정신, 나의 삶을 향기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