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난 이미 어른이니까 이런 책은 안 읽어도 돼' 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스스로 완전한 어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그 사람은 어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 책은 이 대목 때문에 골랐다. 도쿄대 문과와 이과 교수가 함께 만든 '어른 되기' 교양 수업이란 부제도 붙었다.
'어른 되기' 교양 수업이란 말을 들으면 "조금 늦어도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이런 말이 떠오르지만, 이 책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제1강 '표절은 부정인가', 제6장 굶주린 아이 앞에서 문학이 유용한가, 제8강 국민은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종강 '차이를 뛰어넘는 일은 가능한가'까지 질문에 학생들과 교수가 질문과 대답을 통해 논의를 하는 과정을 담았다. 어렵게 느껴져도 자세히 읽으면 이해가 될 만하다.
특히 논의의 과정과 별개로 '들어가며', 즉 프롤로그 부분이 인상 깊었다. 어른의 정의를 내려가는 과정을 쓴 건데, 책의 전체적인 내용 전개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른'은 어떤 존재를 의미하는 걸까?란 물음에 답을 하나 하나 답을 찾아나는 과정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자라나서 좋은 어른이 되기를 원하고, 나 또한 무엇이 되고 싶다보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소망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가 다르듯. 어른이 된 사람도 모두가 다르며 '괜찮은 어른'을 과연 정의할 수 있을까란 회의감에 들어 한동안 목표를 잃기도 했다. 흘러가듯 사는 거다. 하지만 이 책은 '좋은 어른','괜찮은 어른'이 아닌 그냥 '어른'은 이래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어른'이라 하면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을 알고, 분별력 있고, 선악 구분이 가능하고, 사회적 상식을 갖추고, 타인과 잘 어울리고, 주변과 타협이 가능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따라서 평정심을 갖고 대응할 상황에서 감정을 그대로 분출한다거나, 발언을 조심해야 할 상황에서 무턱대고 의구심을 드러낸다거나 하는 경우, 주변에서 '자네, 좀 어른이 되게나' 라고 나무라곤 한다. 아무래도 '어른'이란 무모하게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모든 사태에 대처하며 넓은 도량으로 좋고 나쁨을 받아넘길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불문율인 듯하다.
지금까지가 이 책에서 어른이라고 말하는 부분인데, 내가 추구해온 '어른의 모습'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이 의견에 반론을 들며 의견을 개진한다. 흔한 어른이들의 착각이라는 거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명시적 암시적인 사회의 검열을 수없이 거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감정을 길들이는 요령을 익히게 되고 점차 의문을 의문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상황을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어른'이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생기는 분노나 초조함을 억제하거나 불신 및 의심이 가는 감정을 봉인하는 행위는 성숙의 정도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는커녕 오히려 퇴화의 징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다양한 국면에서 감정적으로 격앙하거나 소박한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에 대해 숨길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이런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능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통상적인 정의에 역행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이 책에서는 나이가 들어서도 이러한 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것을 '어른이 되는 것'의 첫번째 조건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이러한 정의에 입각한다면, 다소 역설적이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일단 '아이가 될 필요가 있다'
아이처럼 슬픈 일에 슬퍼하고 이상한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익숙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 자신이 왜 지금 여기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 이런 '아이'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 '어른'도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미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어른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거 '아이가 되는 것'만으로도 될 일도 아니다. '어른이 되기'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하나 더 있다. 다양한 감정이나 의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안에서 음미하고 되새기며 소화시킨 후에 다른 사람과 공유 가능한 형태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한 인간은 어디까지나 아이인 채로 성장하지 못한다.
자신의 내부에 싹을 틔운 애매한 감정을 소박한 의문에 분명한 언어를 덧대어서 자신을 제외한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
이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에 완전히 실행하려면 소질 및 소양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고도의 사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요소를 묶어 '교양'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따라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측면에 있어서 교양을 익히는 것 즉 '교양인'이 되는 것이 두번째 조건이다.
사실 어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는 단순하고 어리석었다. 과장 보태 얘기하자면, 어린이와 반대로 살자가 아닐까. 떠들지 않고 조용히 하며, 억울하거나 화가 나더라도 쉽게 표현하지 않고, 나보다 타인의 사정을 이해하는 게 조금 더 어린이보다 자란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린이보다 못한 물리적 어른일 뿐이었다고 요즘 느낀다. 가장 중요한 건 어린이처럼 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어린이처럼 마주하는 상황에 솔직한 감정을 느끼고, 느끼는 것을 정확한 단어로 '교양있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괜찮은 어른'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