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아이스크림... 인간은 동물이니까

진화심리학으로 보는 책 <행복의 기원>

by 글월 문
행복을 생각하기에 앞서, 행복을 찾는 인간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자. 인간은 동물이다. 행복에 대해 고민도 해보는 똘똘한 면은 있으나,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다. 생존과 짝짓기. 인간은 좀 더 세련되고 복잡하게, 때로는 대의명분을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그 목표들을 이룰 뿐이다.


저자는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살기 위해서 우리가 행복한 거다. 한자어로 얘기하자면,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서 '행복한 경험'을 발명해냈다. 그래서 거의 대다수의 '행복론'은 틀렸다는, 어떻게 보면 과감한 주장을 이어간다.


침팬지와 인간이 다르다고 생각한 지 고작 2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이 사진에서 인간이 가장 높은 곳에 서있다고 해서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저 점점 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는 조상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여정을 달리 한 건 600만 년 전.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문명 생활을 한 게 6천 년 전이다. 그러니까 이 시간을 1년으로 환산하면, 우리는 고작 365일 가운데 2시간 동안 쟁기로 논을 갈다가, 기계로 자동차를 만들고, 온라인으로 만나기 시작한 거다. 생김새가 달라졌고, 옷을 입는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챔팬지의 본능을 잊고, 이성으로만 살 수 있을까

공작새든 인간이든 좋은 유전자를 받아야 하는 암컷은 이런 ‘위너 수컷’들에게 홀리게 돼 있다. 유혹하고 유혹당하고, 짝짓기에 성공하고 실패하고. 진화에 또 하나의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성性 선택’ 과정을 상세하게 다룬 것이 1871년 출판된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다. 이것으로 진화론의 큰 틀이 거의 완성된다.

행복의 기원 | 서은국


진화론의 핵심은 동물의 행동은 생존과 번식이며, 인간이 동물의 본능을 현대에도 고스란히 갖고 있다면 (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의 목적은 결국 생존과 번식에 이유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독려하기 위한 경험일 뿐인데, 이때 의심이 든다.

전혀 생존과 번식에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예술은 어떻고, 민주주의와 독립을 향한 투쟁은 어떤가. 예술만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도 아니다. 투쟁은 스스로 몸을 던진 고귀한 헌신이라고 표현된다. 우리는 생존과 번식만을 위해 사는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몸을 던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우선 '피카소 효과'라는 게 있다. 피카소는 꾸준한 사람이 아니었다. 창의력이 솟구칠 때마다 붓을 들었는데, 그 시기는 그의 삶에 새로운 여인이 등장할 때와 비슷했다. 그래서 한 실험에선 남학생들에게 만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재밌는 캡션을 달라고 했다. 한 집단에는 돈을 걸었고, 한 집단에는 멋진 여인과 해변을 걷는 상상을 하게 했는데, 더 재밌는 쪽은 후자였다. 이를 '피카소 효과'라고 부른다.


자유를 향한 투쟁 하면 누가 떠오르는 가. '비폭력주의'의 간디, 얼마 전 미국에선 이 사람을 기리는 날로 주식 시장이 하루 쉬기도 했던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이 두 사람의 이면엔 여성편력이 자리했다. 언뜻 보면 생존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생존과 직결되는 행동은 인간만 하는 건 아니다.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를 보라. 포식자에게 노출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수컷 공작새의 생존은 얼마나 꼬리가 화려 한 지로 결정된다. '나는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면서도, 너에게 구애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기만한 꼬리엔 수컷 공작새 번식의 이유가 담겨있다


비옥하지만 가보지 않은 낯선 땅, 매력적인 이성, 절벽에 붙어 있는 꿀이 가득한 벌집. 지금 당장 손에 쥐지 못한다고 실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이런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번호표를 쥐고 기다린다고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두렵지만 길을 나서야 되고, 고단하지만 열 번을 찍어봐야 한다.

행복의 기원 | 서은국


좋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인정해보자. 그러면 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행복한 가. 답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사례를 모아 결론을 말하는 '귀납적 방법'으로 보자면,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하려면 그 과정과 결과에서 '쾌락'을 느껴야 하고, 이 쾌락은 고귀한 행복과 비천한 행복을 가리지 않는다. 정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행복이다. 과학적으로도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나 아늑한 집에서 먹는 라면이나 비슷하다는 것. 또 하나는 원리를 얘기하는 '연역적 방법'으론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거다. 마냥 대학에 가고, 시험에 붙고, 결혼을 하는 건 행복하지만 이걸 다 거쳤다고 해서 행복할까.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원 | 서은국


저자는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고 말한다. 그도 지도교수의 논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행복론을 찾았다고 말하는 이 문장은 행복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점을 준다. 행복해지려면 이 빈도를 많이 늘려야 한다. 그래야 더 '행복하게' 생존할 수 있다. 큰 목표를 위해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목표로 달리는 길이 즐거울 수 있게 작은 행복한 경험들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험들을 더 해야 할까.


인간의 뇌가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경험은 바로 사람이다. 우리 조상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가장 신경 썼던 게 타인과 잘 지내기기 때문이다. 매번 사냥에 성공할 수는 없기에, 타인에게 손을 빌려야 했다. 집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외부의 위협을 혼자 감당하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나눠서 보초를 서야 했다. 그러려면 관계가 좋아야 했고, 우리 인간은 이렇게 문명을 발전했다. 뇌 과학자 가자니가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이란 표현까지 썼는데, 우리 뇌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복잡하게 발달한 것도 복잡한 우리네 인간관계 때문이다.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또 하나의 절대적 자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람’이다.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람이라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 리 없다.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특히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한다는 뜻이다.

행복의 기원 | 서은국


꽤 글이 길어졌는데, 아직 다루지 못한 내용이 많다. 우리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고, 행복은 그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행복은 사람이다. 행복이 강도가 아닌 빈도라면, 사람과의 만남을 늘리고 관계를 돈독하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MBTI에서 E(외향)인 사람이 I(내향)인 사람보다 더 행복할까. 그렇다면 I(내향)인 사람은 E보다 타고나길 불행하게 태어난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춤과 노래라면 빠지지 않고, 흥이 많은데 왜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을까. 이 답도 이 책이 어느 정도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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