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면...
과거에 썼던 글을 돌아보며
제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부문 심사평&최우수작
논술 심사평
‘자신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면 고위공직자 인선 배제 기준인 5대 원칙(탈세•부동산투기•위장전입•논문표절•병역면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백일장 논제였습니다.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라 준비생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논술을 쓸 때 일단 논제를 파악하는 것이 1순위입니다. 논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장에서”라는 조건이 달려 있어서 까다로워 한 준비생들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 전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도덕성 기준이라는 것이 보통 시민의 그것과 특별히 달라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논제가 묻는 바가 뚜렷했다는 점과 논제의 추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 때문인지 응시생들이 보내준 논술들의 평균 수준이 높았습니다. 일부 글을 제외하고, 응모작 대부분이 논지의 일관성과 명확성을 확보한 글이었습니다. 구조의 완성도를 충족한 글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글들은 5가지 원칙을 어떤 기준이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하는지가 명확했습니다. 여러 개의 기준이나 항목이 제시되는 논제에서는 대개 그것들을 통일성 있게 파악할 기준이나 관점이 있어야 논지를 뚜렷하게 펼칠 수 있습니다.
최우수작과 우수작들은 논지의 일관성과 명확성, 구조의 완성도를 충족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논증의 설득력도 확보한 글이었습니다. 주요한 논증들이 정확하고, 깊이 있고, 체계적이어서 설득력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특히 최우수작은 도덕과 도덕주의를 비교해가면서 전체 글을 구성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도덕주의를 경계하면서 도덕성의 가치를 지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이 설득력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논술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는 10월 제6회 백일장에서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백일장 논술 논제
‘자신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면 고위공직자 인선 배제 기준인 5대 원칙(탈세•부동산투기•위장전입•논문표절•병역면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부문 최우수작_문상혁
도덕과 도덕주의는 구분돼야 한다. 전자는 착하다는 의미다. 후자는 세상을 ‘도덕’의 잣대로만 본다는 뜻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저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도덕주의를 비판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려면 시대상황에 맞게 도덕 원칙을 적용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니부어의 현실주의는 민정수석의 인사 검증 원칙이 돼야 한다. 전문성과 도덕성 사이에서 전문성에 무게를 두고, 도덕적 흠결이 전문성과 연관될 때 5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5대 원칙은 도덕주의적이다. 유일한 기준은 도덕이다. 법을 위반한 사람은 모두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는다. 인사 검증은 재판이 아니다. 공직자의 도덕적 흠결이 이해할만한 사안인지 따지는 자리다. 역대 정부의 고위공직자 후보 대다수가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다. 주민등록법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들 모두가 비도덕적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위장전입의 목적에 따라 달리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자녀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은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인지상정으로 볼 수 있다. 아내 암 치료를 위한 위장전입도 마찬가지. 인지상정의 형법적 용어가 정상참작이다. 민정수석의 인사 판단 근거가 될 만하다.
도덕주의의 폐해는 섣부른 낙인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도덕성의 차원으로 돌려버린다. 5대 원칙의 기계적 적용은 공직자의 능력을 간과할 가능성이 높다. 한 인물이 간통을 저질렀다. 5대 원칙을 통과할 수 있을까. 조선조 최고의 재상으로 평가받는 황희는 5대 원칙에 걸렸을 터다. 그러나 세종은 ‘수신제가’는 못하지만, ‘치국평천하’는 할 수 있는 인사라 그를 등용했다. 현 정부는 어느 때보다 ‘치국평천하’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민정수석은 민심의 동향을 포착하는 자리다. 여론은 개혁을 단행할 능력 있는 인사를 원한다. 민정수석이 도덕성보다 전문성에 무게를 둬야 하는 까닭이다.
5대 원칙의 탄력적 적용은 도덕주의를 경계해야 하나, 도덕성까지 지나쳐선 안 된다. 공직자의 전문성에 도덕적 흠결이 있다면 정책 추진력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 검증의 ‘레드라인’은 도덕성이 공직자의 전문성과 관련될 때를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비교육적 행보를 걸어왔고, 국방부 장관이 방산 업체에 도움을 줬다면 어떨까. 해당 분야의 개혁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아 정책을 도입하기 어렵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이른바 ‘김송조(김상곤·조대엽·송영무)’트리오는 재고돼야 한다. 세 사람 모두 전문 분야에서 도덕성 문제가 발견됐다.
여당은 우리 사회에 티 하나 없는 ‘도덕적’인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야당은 민정수석의 인사검증이 부실하다고 비판한다. 둘 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결국 도덕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현실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다. 5대 원칙도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되, 그 안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유연한 인사 검증 기준’은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본래 인사가 그렇다. 사람 뽑는 일은 무 자르는 일과 다르다. 민정수석이 칼이 아닌 저울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공직자의 전문성과 도덕성 사이에서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는 저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