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는 웅이랑 절대로 헤어질 마음이 없거든. 헤어질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싸워도 결국 져주는 것 말고는 선택할 게 없어. 갖고 있는 카드 줘볼래? 남은 카드가 '항복 카드' 뿐이지? 그 카드는 버리고 이걸 받아. 이건, '이별 카드' 연애 중에는 늘 몸에 지니고 있어야 되는 카드야. 이건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 이게 없으면 유미는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어. 앞으로 유미는 '이별 카드'를 소지한다.
-'유미의 세포들' 판사 세포의 판결-
시간에 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걸 연애라고 한다면, 늘 연필을 상대에게 쥐어주는 사람이 있다. '네가 쓰고 싶은 걸 마음껏 써. 내가 도울게' 상대가 기뻐하는 걸 보면, 같이 기쁘고. 슬퍼하는 걸 보면 함께 슬퍼하는 사랑. 상대가 어떻게 편하게 쓸 까 고민하고, 잘못 써지면 스스로를 책망한다.
그래서 치열한 사랑을 할 때 이별을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펜을 놓는 건 펜을 쥐고 있는 상대의 몫이었다. 펜을 던지려고 하면, 그걸 최선을 다해서 막는 게 나의 역할일 뿐,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어'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별을 한 이유는... 갑자기 내가 펜을 들고 싶어 져서였다.
애초에 '이별 카드'를 들고 있지 않아서였다. 상대에게 펜을 맡긴 이유는 싸우기 두려웠던 것 같다. 이야기가 얽히는 게 싫어서 피해버린 거다. 그러나 사랑은 '우리의 이야기'를 한 줄, 한 줄씩 써 내려가는 거다. 사이가 좋지 않을 땐 겹쳐서 알 수 없는 말이 되어버리고, 때론 상대의 글을 지우고 싶어도 말이다. 사랑 이야기는 공동 명의여야 한다.
사실 '이별 카드'를 들고 있으라는 판사 세포의 진의는 따로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쓰느라 '나의 이야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판결이다. 연애 중에도 늘 몸에 지니고 있는 '이별 카드'는 이럴 때 가치 있다. 나를 잃지 않고 사랑하려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내가 없는 '우리의 이야기'는 늘 미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