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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문 Jul 05. 2022

세상의 비난에도 홀로 버티는 이유

'순백의 윔블던'에 튀어나온 '빨간 모자'

윔블던은 선수부터 관중까지 모두 흰색 복장을 착용하는 전통이 있다. 선수들은 옷은 물론 모자와 신발, 속옷까지 (혹시 비칠까 봐) 흰색으로 입는다고 한다. 그런데 윔블던 16강에선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호주의 닉 키리오스라는 선수가 빨간 모자에 빨간 신발을 신고 코트에 등장했다.

시합에선 모두 흰색으로 갈아입었지만 경기를 이기고도 혼이 났다. 한 기자가 "왜 규칙을 어기고 그런 복장을 착용했냐"라고 힐난한 것이다. 닉 키리오스는 고개 숙이지 않았다. "내가 입고 싶었습니다" 기자가 "당신은 규칙 위에 있나"라고 되물었지만 키리오스는 "아니요. 저는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 하고, 학생은 선생님에게 배우고, 신입사원은 선배를 본다. 사람의 본능이고 기본을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기존의 관습을 비틀거나 때로는 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슛은 림에서 가까이 쏠수록 효율적이다'는 과학적 주장을 뒤집고 3점 슛 시대를 연 '스테픈 커리', 고대 전설처럼 여겨지던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는 이도류의 '오타니'도 그렇다.


어쩌면 타고난 재능은 별다른 게 아닐지 모른다.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기 위해 세상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낸 사람들이 아닐까. 기본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다르면 해볼까 시도해보고, 기꺼이 실패를 향한 조롱을 견뎌내고, 비판에 물러나지 않고 받아들여 넘어내는 일. 만화 같은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의 가장 특별한 재능은 인내다.


사실 닉 키리오스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며 관중들의 고개를 빼낸다. '강서버'지만 테니스를 처음 배우는 이들이 쓰곤 하는 '언더 서브'를 꺼내 들고, 포핸드와 백핸드의 정석 자세를 버리고 '가랑이 샷'을 선보인다. 고상한 귀족들이 치던 테니스에서 광대처럼 움직이는 데, 이런 테니스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키리오스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는 8년 만에 윔블던 8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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