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중심을 차지하는 방법
'아랍의 봄' 시작한 고국 튀니지처럼...테니스 종주국에서 최초 결승
12년 전, '아랍의 봄'의 시작은 튀니지였습니다. 독재 정부의 부패에 갈수록 가난해진 튀니지 시민들이 먼저 들고일어났습니다. 튀니지에서 불붙은 시위는 도미노처럼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등 번져갔습니다. 지금도 '아랍의 민주화'는 독재냐 민주냐로 논쟁이지만, '아랍의 봄'을 이끈 튀니지는 아랍권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있는 드문 나라로 꼽힙니다. 그리고 오늘 한 튀니지 선수가 테니스 종주국, 영국에서 또 한 번의 '테니스의 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 튀니지 선수가 테니스 종주국, 영국에서 또 한 번의 '테니스의 봄'을 불렀습니다.
주인공은 온스 자베르(2위·튀니지). 윔블던 여자 단식 4강전에서 자베르의 플레이에 현지 중계진은 테니스의 '새로운 샷(shot)'이라고 감탄했습니다. 농구에선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는 표현이 있듯, 테니스에선 '네트를 점령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공이 날아와도 발리와 스매시로 가볍게 득점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상대 타티아나 마리아(독일·103위)는 네트 앞에서도 포인트를 잃었습니다. 자베르가 앞을 보지 않고 어깨너머로 친 샷으로 무너뜨린 겁니다. 현지 중계진은 “이건 불가능하다”라고 했습니다.
자베르의 승리로 테니스의 새 페이지가 열렸습니다. 남녀를 통틀어 튀니지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한 선수가 나왔습니다.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적도 없었습니다. 아랍과 아프리카로 범위를 넓혀 봐도 자베르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튀니지에선 벌써 테니스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하죠. 자베르의 놀라운 기록에서 말해주듯, 사실 아랍에선 테니스 스타가 좀처럼 나오지 못했습니다. 튀니지가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듯, 서양의 지배를 받아왔던 아랍계에선 말 그대로 '혁명'인 셈입니다. 그것도 테니스 종주국, 영국에서 말이죠.
“튀니지는 아랍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아프리카 대륙과도 연결돼 있다. 이는 유럽이나 다른 대륙과 다르다. 나의 조국, 중동,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테니스 선수를 보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보여주겠다. 많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자베르도 경기가 끝난 뒤 작은 바람을 말했습니다. 세 살 때, 테니스가 취미인 어머니를 따라 라켓을 처음 잡아본 자베르. 열 살엔 테니스를 할 코트가 없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열성적인 어머니는 자베르를 튀니지의 호텔 안 코트, 벨기에와 프랑스의 테니스 코트로도 이끌며 딸의 꿈을 믿어줬습니다. 자베르는 “솔직히 털어놓자면, 저는 100% 확신도 없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저를 믿어줬고, 그 믿음이 저의 자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고 털어놨습니다. 오늘날 튀니지 어린이들은 '온스 자베르'의 이름이 적힌 10개의 코트에 모여 테니스를 마음껏 합니다.
자베르의 새 역사만큼 화제가 된 건 코트의 뒷이야기입니다. 사실 상대 선수, 마리아는 두 딸의 엄마로 윔블던 4강에 오른 역대 두 번째 선수. 세계 103위의 선수가 지난해 4월, 둘째 딸을 낳고 생애 처음 메이저 4강에 오른 건데, 자베르는 경기에서 이긴 뒤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리아를 한참 동안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승자에게 쏟아지는 박수를 홀로 받지 않고, 마리아의 손을 잡고 코트 중앙으로 이끈 뒤 함께 기뻐했습니다.
'행복부 장관(minister of happiness)' 자베르의 별명입니다. 코트에선 진지하지만, 경기가 끝나자 환한 웃음을 짓는 자베르를 향한 즐거운 칭찬이죠. 4강전이 끝나고 당신을 잘 드러내는 별명이냐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자베르는 “튀니지 사람들이 '행복부 장관'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면 저도 고맙습니다. 실제로 장관을 만났는데 '안녕하세요, 장관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영원히 장관 하길 바랍니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사족으로, 그 뒤에 이어진 '앞의 질문에 이어 영국의 총리(prime minister)가 사임했는데, 이게 옳은 결정이라고 보냐'는 황당한 질문에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행복부 장관이에요”라고 받아치며 썰렁해진 기자회견을 웃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