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일기 #2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가 무엇인가요? 저는 가장 먼저 <비밀의 숲>을 떠올립니다.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황시목 검사가 주인공입니다. 감각을 남들보다 예민하게 느껴 뇌섬엽 일부를 절제해야 했던 어린 시목은 커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죠.
시목은 수술 후유증으로 따돌림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고, 아끼던 후배가 죽어도 곧바로 '피해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감정을 잃어버린 시목조차 미소를 보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모두 '우리'를 말할 때입니다.
"우리끼리도 못 믿게 하고 범죄가 참 그래요"
시목은 이 한 마디에 극 중에서 처음 미소를 짓습니다. 함께 수사를 해 나가는 한여진 경위(배두나)가 건넨 말이죠.
"근데 내가 사실을 말하는지 어떻게 알고... 믿어요?" "누가 믿는데요? 나 안 믿어요. 음"
두 번째는 별다른 의심 없이 믿어주는 여진의 말 덕분이었고, 마지막은 드라마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 나옵니다. 수사가 끝이 나고 시목은 서울로 다시 올라오라는 부장의 말을 듣고 옛 추억을 꺼내듭니다. 특임팀 회식 사진이죠.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던 시목을 바꾼 '우리'의 힘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동물이다'라고 말하는 책 <행복의 기원>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뿐이다.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 일상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70%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LIbermanm, 2013)
사회성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됐는지, '만물의 영장'이어서 사회성이 발달했는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아직은 모릅니다. 다만 중요한 건 사람은 사람 때문에 웃고 우는 쾌락을 느낀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함께 팀을 이뤄하는 스포츠에 열광하고, 또 경기장에 우리끼리 팀을 이뤄 함께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는 유별납니다. 멀게는 1592년 임진왜란부터, 가깝게는 1997년 IMF까지 정치 경제적 위기를 넘겨온 데는 '한국인의 DNA'까지 거론될 정도로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일 때는 우리로 뭉치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32위.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정치는 곪을 때로 곪았습니다. '우리끼리 왜 이래'로 대변되는 폐쇄적인 집단에서 범죄 피해자들은 여전히 구제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이유로 외면되어 온 숱한 개인들은 아직도 방황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라는 말은 달리 해석되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이 글의 이유가 된, 제 나름대로는 놀라운 발견인 시목의 미소 이야기에 답이 숨어 있습니다. 시목이 어쩔 수 없이 잘라야 했던 뇌섬엽은 뇌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부위'라고 합니다. 뭔가를 원하고 좋고 싫고 이런 걸 관장해서죠.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게 된 시목은 '사람 됐다'는 말은 못 듣지만, 대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우리는 하나다'는 검사 동일체 원칙 속에서도 말이죠. 앞서 말했던 복잡한 문제를 하나씩 풀 수 있는 시작은 우리가 '하나의 가치'를 존중할 때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처음 시(始), 나무 목(木), 비밀의 숲에서 자기 몸을 태워 빛을 내는 '땔나무'를 뜻하는 시목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