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은 왠지 춥고 서늘한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생각나는 소설이다. 특히 작품의 배경인 신도시 특유의 공허함이 더 진해진다. 감정이 마비된 차가운 주인공의 모습은 더 잘 그려진다. 그가 휘두른 면도칼로 만든 피 위로는 김이 피어 오르는 듯하다.
한 장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가장 궁금해지는 건 “악은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는 마지막 표지의 질문이다.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공부한 덕에 한 길 사람 마음은 모르지만 사이코패스가 뭔지 정도쯤 알게 됐다.
사람과 사이코패스를 앞선 문장에서 구분한 이유는 같은 종인데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편도체의 작동 유무가 다르다. 아몬드처럼 생긴 뇌의 조그만 부위는 공포를 예민하게 느낀다.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선조들은 다른 동물의 위협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용도로, 요즘에는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데 쓴다.
아몬드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는 영역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편도체가 활성화하지 않으면, 감정의 표면인 표정을 직관적으로 읽지 못한다. 사이코패스 주인공인 유진은 “표정을 공부했다”고 말한다. 놀라운 건 유진 같은 포식자는 편도체가 없는 덕(탓)에 타인의 감정에 대응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말이 길어졌다. 소설의 주제를 반드시 찾을 필요는 없지만 (언어영역도 아니고) 권선징악을 외면한 결말에 화가 났던 탓일까. 답도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유산인 면도칼로 어머니와 이모를 죽이고 난 뒤 유진이 남긴 독백만 떠오른다. “다윈의 가르침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죽거나, 적응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