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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팀장님 Feb 03. 2022

누구 라인이야? _낙하산과 슬기롭게 일하는 법 3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낙하산(?)이라는 분을 가끔 만나기도 한다.

그 분이 상사 또는 부하 직원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곤란한 경우는 동료 일 때다.

비슷한 위치의 동료로 낙하산이 있다면 직장 생활 참 힘들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전문적인 업무를 하는 부서라 낙하산 따위 없을거라 하지만, 미술 또는 디자인 근처 전공했다고 하면 가장 먼저 우리 부서로 보내지는 것 같다.


인원 티오도 없는데 우리팀에 한 명이 충원됐다. 출근하고 팀장님이 직원 한 분을 데려 오셨다. 본인도 방금 들어서 알게 됐다며 기분이 별로 안좋아 보였다. 황당한 표정이다. 어색한 소개를 하고, 위치를 잡아 책상을 세팅하고, 문구류 등을 신청했다. 팀장님은 업무 분장을 새로 하기 위해 개인 면담을 하신다. 아마 어떤 라인의 낙하산인지 더 궁금할 것 같다. 본부장님에게도 다녀 오고 분주하다. 아마도 잘 지내라는 말만 듣고 오신 듯하다. 점심 시간은 신규 입사자가 있으니 환영회를 겸한 간단한(?) 회식이다. 오전 내내 이런저런 회사 적응 관련 대화를 하다가 점심 먹으며 본격적으로 서로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된다. 우리팀에는 대리가 많았는데 브랜드 담당자들이 대부분 대리급이고 팀장님은 차장님이셨다. 전직장이 어디였냐고 물어 보니, 미술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쳤다고 했다. 어쨌거나 그녀, J도 대리로 입사했다. 과장이나 차장이 들으면 우습겠지만 대리들이 모여 있으면 나름 서열이 있다. 사원이나 주임에서 대리가 된지 얼마 안된 대리부터 과장 승진에 한 번쯤 미끄러져 본 대리까지 다양하다. 당시, 나도 대리였다.


오후에, 팀장님이 J대리를 타부서에 인사 시키라고 하셨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대리 한 명이 새로 왔을 뿐인데 팀장들, 실장들까지 깎듯하게 인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둥,,, 이런 호의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J대리는 회사분들 너무 좋은 사람들 같다고 한다. 사무실을 한 바퀴 돌고나서 이어지는 미팅, 직원들의 관심은 한결같았다.



누구 라인이야?



J대리는 늘 원피스나 스커트 정장을 입고 다녔다. 그녀의 패션은 '샤랄라~'였다. 그녀가 타고 다니는 수입차는 회사 지하 주차장에 들어 가지 않아서 따로 금액을 지불하고 회사 건너편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사는 곳도 강남이어서 늘 강남의 핫플레이스 얘기를 했다. 한 팀원이 아주 큰 맘 먹고 모은 돈을 털어 손바닥만한 블랙 샤넬백을 살 때, J대리는 1년에 몇 번 들까 말까한 초록색 샤넬백을 들고 출근했다. 사원들은 그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우리팀 다수의 대리들은 못마땅했다. 어느 갑자기 비 오는 날, 매장에서 연출할 일이 있어서 발이 젖어 일이 끝났을 무렵, J대리는 구찌 슬리퍼에서 발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며 궁시렁 거리고 있었다. 회사 식당 밥 못먹겠다고 늘 밖에 나가서 먹자고 했다. 커피를 마시든 밥을 먹든 10원 하나도 딱 끊어서 계산하는 그녀였다.


타부서와 미팅을 할 때도 그녀의 의견은 대체로 좋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까칠하게 본다면 한없이 부족한 것이 되고 너그럽게 본다면 넘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J대리는 미대를 나왔다고 했지만 포토샵과 일러스트는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러나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팀 막내사원이나 팀장님이 해주시면 되었다. 회계관련 부서에 넘기는 서류도 못하면 하루쯤 미뤄도 괜찮았다. 많은 사람들인 그녀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J대리는 '직장 생활 까짓거~, 누가 힘들다고 했나...'라며 회사를 다니는 것 같았다. VMD 창고를 정리할 때도 그녀는 조금 하다가 곧 없어졌다. 매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니저들도 '낙하신'이라는 단어 하나면 더 잘 해준다. 오히려 챙겨 준다. 서로 J대리 일 잘한다고 칭찬을 하기에 이르렀다. 업무 실적이 수치화 되지 않는 부서의 업무 고과는 이런 것이었다.


출장을 가도 J대리는 출장비를 여유롭게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비싼 음식, 커피, 숙소,,, 결제에 있어 자유로웠다. 팀장님이 다 용인해 주는 것일까 궁금했다. 본인의 돈은 10원도 쓰지 않으면서도 항상 당당했다.






문제는 인사고과, 연봉협상, 승진에 관련해 불거지기 시작했다.

팀마다 룸(ROOM)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팀에 배분된 고과 점수 S,A,B,C,D의 비율, 연봉의 액수, 승진자에 대한 덩어리가 있어서 이것을 n으로 나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팀에 S가 있으면 D가 있어야 했다. J대리는 평균 이상이었다. 승진도 1년 정도 빨리 했다. 뭔가 손해 보는듯한 팀원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또 시간이 지나니 그러려니 했다. 낙하산이라 왕따 같은 것도 있을 법한데 그런 것 없이 잘 다녔다. 다만 누가 봐도 딱 아는 그래픽 실력과 연출 실력이 바닥을 보일 때,조금 힘들어 하는 것 같기는 했다. 그것도 아주 조금이었다.


" 난 원래 이런 거 잘 못하잖아~ "


그러면 그만이었다. '이런 거...'라니, 참, 이런 거 못하면 회사 못다니는 건데,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3년 정도 시간이 흘러 J대리가 결혼을 했다.

회사를 다니는건지 결혼 준비를 하러 다니는건지 모를 정도로 공과 사를 구분 못하더니 결혼을 하고는 퇴사했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쁘다는 신부 수업을 한다고 했다. 오전에 요리 학원, 오후에 꽃꽂이를 배우러 다닌다며 일상이 지루하다고 했다. J대리의 결혼 준비에 관련하여 예단, 예물, 호텔 결혼식...은 정말 대단했다. 출근하면 늘 혼수 자랑이었다. 

가끔 수다스럽던 J대리의 빈 자리가 그리울 때도 있다.

출산과 육아를 통해 좀 더 어른같은 엄마가 되었을까?


같은 공간에서 3년 정도 지내며 업무 때문에 인간적인 대립으로 힘들게 지낸 시간들이 있었다. 동료가 낙하산일 때, 나와 비교되는 듯한 상황들 때문에 마음이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인생'이라는 생각과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지내온 것 같다. 낙하산이라면 일을 못해도 덮어 놓고 잘 해주는 윗사람들, 어떻게든 한 번 엮여 보고 싶은 또래 남자 직원들, 안해도 되는 과잉 친절로 잘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보았다. 회사와 '한 발'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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