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맡기는 법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의 과호흡 경험

by 박주호

따릉이를 타고 가는 출근길, 마주오는 칼바람에 저절로 눈이 깜빡거린다. 출근길은 보행자가 많아서 눈을 감은 채로 자전거를 타기에는 무리가 있다. 누군가를 자전거로 치기 전에 힘껏 인상을 써 보며 눈의 깜빡임을 참아본다. 길지 않은 출근길 - 10분 - 동안 눈을 몇 번을 깜빡였지? 200번? 300번? 바람도 매서웠고 의식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출근길에 10번 이하로 깜빡이면 10억을 주겠다고 했다면, 나는 쉽진 않았겠지만 어떻게든 버텨냈을 것이다.


인간의 신체 운동 종류는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크게 세 가지(수의운동, 불수의운동, 반수의운동)로 나뉜다. 그 중 눈 깜빡임과 같이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평소에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기능을 반수의운동(半隨意運動)이라고 한다. 단어의 뜻 자체가 "의지를 반만 따르는 운동"이다. 반수의운동의 예로는 눈 깜빡임, 기침, 배뇨/배변, 하품, 호흡 등이 있다. 그 중 특히 호흡은 반수의운동 중 생명과 직결되면서 또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호흡은 단어에도 나타나듯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을 뜻한다. 숨을 쉬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산소를 혈액으로 보내고, 혈액 속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이는 호흡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체 대부분에게 동일한 기능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호흡은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우리가 사람답기 위해서는 호흡이 필요하다. 호흡을 이용해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숨을 참았다가 뱉어내야 하고, 하하하 하고 웃기 위해서는 큰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가끔은 깊은 한숨을 통해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때도 있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길고 느린 호흡을 통해 긴장을 풀어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의지를 반만 따르는 이 숨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언제일까. 우리 몸은 운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가빠진다. 만약에 천천히 달린다면 힘들지만 어느 정도 소통은 가능하다. 하지만 속도를 천천히 올리다가 어느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호흡을 하느라 그 어떤 소통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구간에 돌입하는 것이다. 달리기는 반수의운동이 불수의운동을 모사하도록 한다. 나는 호흡이 호흡의 기본적인 기능만 하도록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무척 살피는 아이였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는 이유가 적어도 내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밤마다 다투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잠에 들기에는 우리 집은 너무 좁았다. 매일 부모님의 대화를 자는 척 몰래 훔쳐듣다 잠들던 나는 주변 눈치를 살피는 어른이 되었다. 모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던 나는, 어느 날 그것이 처참하게 실패했다.


학원강사 시절 여러 가지 고민들로 강사를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고 수업을 줄이고 다른 공부를 하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를 향한 여러 가지 기대들이 쏟아졌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꼼꼼히 지도해주기를 바라던 제자들과 학부모님들, 오히려 수업 일수를 늘리기를 원하는 원장님, 항상 바쁘다는 핑계에 소원해지던 당시의 여자친구. 그 밖에도 크고 작은 기대들이 사방에서 쌓여 갔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 보니 당시 사소한 결정들을 미루고 그 시간만 모면하려고 했었다. 미뤘던 결정들에 대한 책임이 동시에 나에게 돌아오는 순간 나의 불안이 터져 나왔다.


그 날은 당시 만나던 친구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 즈음 다른 취업 공부를 하다 보니 다음 날 수업 준비가 부족했다. 점심에 만나 영화만 보고 나온 상황에서 그녀 앞에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금 놀다가 이따가 못 자고 준비하느니 지금 수업 준비를 하라며 그녀는 간다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기껏 줄여놨던 요일에 다시 강의를 열자는 원장님의 문자가 왔고, 며칠 전 학부모 설명회에서 실수한 부분에 대한 부원장님의 부정적인 피드백 문자가 연달아 왔다.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안정된 상태에서는 보통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숨을 쉬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는데, 이 정도 마셨으면 충분한지 조금 더 마시는 게 좋을지, 이쯤부터는 숨을 내뱉는 게 좋을지 아니면 좀 참았다가 뱉어야 하는지. 단 한 번의 숨을 쉬는 데에도 온갖 고민이 들면서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서부터 평생을 해온 일이고,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워야 하는 이 행위가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 날도 이 숨이라는 것이 너무 어색해져서 잘 마셔 보려고 노력을 했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호흡을 조금 깊고 조금 빠르게 여러 차례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시야가 흐려지더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를 진정시키려 더 깊고 빠르게 호흡을 해 보았지만,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시야는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손발이 찌릿찌릿 저리더니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온몸이 떨리고 얼굴 근육까지 수축되고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서운 마음에 계속해서 깊게 심호흡을 해 보았지만 증상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조금 회복이 된 후에 바로 병원을 가서 검사와 함께 약을 받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형적인 과호흡으로 인한 증상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호흡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몸이 고장나 버린 것이다.


순환계에서 호흡의 역할은 간단하다. 몸속 대사에 사용할 산소를 혈액에 공급하고, 대사의 부산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몸이 활동을 하면 혈액 속 산소를 사용하고,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혈액에 녹인다. 그에 맞춰 호흡을 하면 혈액 속에 산소의 농도는 다시 높아지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지게 된다. 그런데 과호흡을 하게 되면 이산화탄소가 필요 이상으로 빠져나가면서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 결과 신경과 근육이 과하게 흥분하게 되어 손발이 저리고 근육이 수축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체내에 내려간 이산화탄소 비율을 다시 올리는 것. 억지로 들이마시고 내쉬던 숨을 바로잡는 것. 즉각적인 해결책은 종이봉투에 대고 숨을 쉬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뱉었던 숨을 다시 마셔 체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인다. 다만 이 방법은 산소의 농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적절히 사용해야 하고 중요한 것은 다시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몸의 순환계를 돌려놓는 것이다.


나는 억지로 호흡을 이용해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하다가 과호흡으로 넘어갔다. 이 반수의운동을 불수의운동으로 바꿔 볼 발상을 떠올린 것도 그때이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 우리 몸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간다. 체내의 이산화탄소 비율이 올라가면 우리 몸은 올라간 이산화탄소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 호흡중추가 자극을 받아 더 빨리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달리기를 하면 몸은 힘들지만 자연스러운 -내 의지가 아닌 호흡 중추에 맡기는- 호흡이 가능하다. 달리기는 몸의 이산화탄소 비율을 높이기 때문에 과호흡으로 인한 증상을 없애는 데에 탁월하다.


이후 과호흡이 온 적은 없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듯싶으면 눈물이 먼저 난다. 그러면 나는 호흡을 더욱 신경 쓴다. 너무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 안 된다. 오히려 숨을 적당히 참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몸속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적절히 맞춰지면 내 몸은 멀쩡히 돌아간다. 몸의 반응에 대해 알게 되니 이전에는 두려웠던 심리적 반응도 두렵지 않게 된다.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에는 그렇게 대처는 할 수 있지만 제일 좋은 것은 이 반수의운동에 나의 의지가 덜 들어가도록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일 것이다.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서는 편안한 마음을 갖기는 영 어려운 것 같다. 이건 아직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 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고민이나 생각을 감추지 않고 계속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툴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결정을 미루지 않는다. 결정을 미루면 주변 사람들은 내 마음을 모르고 다른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기대를 하기 전에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내 나름의 마음의 달리기가 되면 좋겠다.


몸과 마음이 가장 자연스러운 그 지점, 그 상태를 언젠가는 찾아낼 수 있을까? 몸속을 순환하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적절히 평형을 이루면서, 숨을 더 마시지도 덜 마시지도 않는 딱 그만큼의 호흡을 찾고 싶다. 새근새근 드르렁 푸우- 잠을 잘 때처럼. 엄청 애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놓아 버리지도 않는 삶의 균형을 잡고 싶어 지금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과호흡으로 이산화탄소가 과도하게 빠져나가면 혈액 속 탄산이 줄어들고, 따라서 수소이온도 줄어들어 혈액이 알칼리성을 띠게 된다. 혈액이 알칼리성이 되면 혈중 칼슘이온이 단백질에 더 많이 결합해 버려서 실제로 쓸 수 있는 칼슘이온이 줄어든다. 신경과 근육의 흥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이 칼슘이온이 부족해지면, 신경과 근육이 과하게 흥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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