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 피아니스트의 소맥 눈뜨기!

I got rhythm - Hayato Sumino

by 뮤텔 빠삐짱




나는 멀티가 안 되는 인간이다.


신혼 시절, 요리를 하면 남편은 "비커에 눈금 확인하는 과학자 같다"고 했다. 맞다, 요리는 과학이니까. 하지만 이 과학자는 실험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못한다.

가스레인지에 음식 두 개가 올라가면 하나는 망치고, 운전하면서 전화하면 엉뚱한 곳에 가 있다.


평생 한 우물을 판 여자


그래서 딸아이가 "동생 낳아달라"고 졸라댈 때도 "엄마는 너 말고 다른 아기를 사랑해줄 수가 없어서 안 낳는 거야"라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절했다.


사실은 아이 둘을 돌보는 멀티태스킹이 두려웠던 것인데.


그래서 내 인생은 항상 한 우물이었다.


다섯 살에 시작한 피아노는 평생의 업이 되었고, 남들이 실내악도 하고 반주도 하는 동안 나는 독주에만 올인했다. 중학교 때 가야금과 성악에 잠깐 눈을 돌리고, 고등학교 때 오빠의 재즈 음반에 매혹된 적도 있었지만, 클래식 피아노 독주에 의리를 지키는 것이 사명인 양 올곧이 살았다.


LA에서 만난 경계 파괴자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두루두루 함께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살아야 재미있다는 것도.

경주마의 차안대처럼 내 시야를 가렸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면서, 좀 더 다양하고 즐거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얼마전 LA 헐리우드 볼 야외 음악회에서 만난 일본 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다. 유튜브와 인스타에서 자주 보던 바로 그 사람 말이다.

음악 전공이 아닌데도 놀라운 테크닉을 자랑하며,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시도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처음엔 그냥 좀 튀고 싶어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직접 보고 나니 없던 관심과 애정이 솔솔 피어났다.


도쿄대 공학도의 반전 매력


도쿄대 공학과 출신이 피아노를 취미로 치면서 쇼팽 국제 콩쿠르 3라운드까지?

정말 다 가진 사람인 것 같다.

팝 밴드 키보디스트로 활동 ✓

재즈 연주 ✓

작곡과 편곡 ✓

그야말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스타일!


"장르를 특정하지 않는,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대로, 경계를 넘나들며 청중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음악가였다.

오직 한 곳만 바라보며 살던 나 같은 사람에게 제대로 된 각성의 시간을 선사해주는 그런 음악가.


잊을 수 없는 그 순간들


왼손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오른손과 입으로는 멜로디카를 연주하고, 연주 중에도 왼손가락으로 흥겹게 스냅핑하는 모습.

뇌리에 각인되는 멋진 장면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특히 앵콜 곡 'I Got Rhythm'에서!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와 리스트의 탄식을 재즈와 맛깔나게 버무려낸 순간. 재즈와 클래식을 톡 쏘는 소맥처럼 말아낸 그의 연주는, "술은 섞어 마시는 게 아니다"며 손사래 치던 나도 소맥이 절로 생각나게 만드는 명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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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깨달았다


한 우물만 파던 내가 이제야 깨달았다.

때로는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깊이를 만든다는 것을.

멀티가 안 되는 나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좀 더 열어두려 한다.

맛깔나는 소맥처럼 말이다.


https://youtu.be/hQhImw7YHwA?si=5wcKHFMiX2dgT_P5
#클래식피아노 #스미노하야토 #LA음악회 #경계넘나들기 #소맥같은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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