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 잊기엔 너무 아까운 눈부시게 예쁜 기억들
그것만은, 그것 하나만은 아무리 아파도 버리기 싫은데
그것만은 잊어야만 해, 그것만은 지워버려야만 해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건 지워야만 해, 그건 버려야만 해, 그건 잊어야만 해
극을 보는 동안에는 솔직히 ‘응?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앉은 자리 주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마음이 움직이려면 올리버와 클레어 사이의 서사가 더 필요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데 공연장을 나오면서, 7년 전 뮤지컬 동아리에서 조각 공연으로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을 연기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줄거리도 모르고 처음 들은 가사와 멜로디에 반하고, 직접 무대에 서 보며 더 빠져들고... 그저 부분만을 재현했을 뿐이지만 얼마나 인상깊었으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연 소식을 기다렸을까. 그 기억이 없었다면 오늘도 극의 존재조차 모른 채 여태까지의 휴일처럼 집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겠지. 물론 그 동아리에서의 기억은 대부분 잊었고 또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아무리 아파도 지우지 말아야 할 기억이 있구나.
오랜 기간 맞은편 집에서 살아왔지만 서로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올리버와 클레어. 충전기가 고장난 클레어가 올리버의 집 문을 두드리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올리버는 옛 주인을 만나러 가고 싶으나 차와 돈이 없었고,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보러 가고 싶으나 충전기가 없었다. 짧은 대화 속에서 상황을 알게 된 둘은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제주도로 향한다. 제주도에서 올리버는 더 이상 옛 주인의 가족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클레어랑 함께 반딧불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분명 여행에서 돌아왔을 땐 쿨하게 헤어졌는데, 곧 약속을 깨러 동시에 서로의 집으로 향하다 복도에서 마주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뭔지 모르던 둘이 왜 서로를 다시 보고 싶어했을까? 왜 나한테는 ‘사랑에 빠질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은데 올리버와 클레어는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까?
백 명에게 물어보면 백 가지의 답이 나오겠지만, 어쩌면 ‘새로움’, ‘신기함’이라는 감정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서로를 신기해했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더 알아가고 이야기를 쌓아나갈 수 있었다. 나도 <어쩌면 해피엔딩> 넘버를 처음 들었을 때의 새로움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용도 잘 모르지만 7년 동안 보고자 계속 생각했던 건 아닐까.
이미 다 알고 있고 익숙해서, 수업 내용을 아예 처음 듣는 아이의 감정을 헤아리는 게 어려웠었다. 지루함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다시 처음 만난 것처럼 생기가 감도는, 신기한 경험을 한 하루였다.
#뮤지컬 #어쩌면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