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시선만 없다면 고통은 줄어들텐데.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토요일은 계속 비어있을 줄 알았는데, 15개월이 아니라 15년은 갈 줄 알았는데, 새로 일자리를 잡게 되면서 북클럽이 기약 없는 휴식기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너무 아쉽지만, 미래를 위한 선택이니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북클럽을 추억에 묻어두기 전, 마지막 지정도서 모임의 주제로 <시선으로부터,>를 골랐다.
자유도서 모임에서 어떤 회원이 소개한 기억을 떠올리고 고른 정세랑 작가의 이 소설은 출간된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친한 후배가 내게 추천해주기도 했고. 알고 보니 <지구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 등 굵직굵직한 작품이 정세랑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때 영화를 좋아하는 줄 알고 영화 동아리에서 활약(?)한 과거가 있는 내게, <시선으로부터,>는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 같았다. 한국에서 요새 찾아보기 힘든, 왕래가 잦은 일가친척이 심시선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자는 명분으로, 할머니가 과거에 살았던 하와이로 한날한시에 떠난다. 고리타분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오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에이 유치하게 그게 뭐야 귀찮아~와 같은 반응도 일절 없이 모두가 수긍한다. 그러고 하와이 곳곳에서 물건을 가져온 후 심시선 할머니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하와이의 아름다운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가 연상되는 플롯이다.
플롯은 이렇듯 단순하게 느껴지지만, ‘시선으로부터’(심시선 할머니로부터) 태어난 가족 구성원 한명 한명이 가진 복잡다단한 사연에 정세랑 작가는 애정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과거 심시선 할머니가 하와이에서 살았을 때 느꼈을, 동양 여자가 겪은 차별과 혐오는 다소 옅어졌지만, 시선의 자녀와 손자는 또 다르게 사회에 의해 ‘규정’되었고 그로 인해 ‘차별’받았다.
시선의 맏손녀 화수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다가왔다. 화수는 온 가족이 하와이의 풍광을 즐기는 동안에도 종일 호텔에 머문다. 직장에서 경쟁사 직원의 분노가 고스란히 실린 염산이 담긴 병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경쟁사 직원의 편을 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마음속으로 힘겹게 삭여야 했던 그. 상처는 유산으로 이어졌고, 그제야 동정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모습을 화수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상상해보면 화수의 무기력함이 이해된다. 이외에도 어릴 적부터 아팠던 자녀를 금이야 옥이야 걱정하는 난정, 그러한 시선이 불편한 딸 우윤의 이야기도 기억난다.
<시선으로부터,>는 개인이 겪은 특별한 이야기의 특별함을 부각하지 않고, 담담한 문체로 ‘이건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잖아’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문장에서는 절제미가 한껏 느껴진다. 인원이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맨 앞에 있는 가계도로 왔다 갔다 한다면 가족끼리의 미묘한 관계도 읽어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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