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고서

1화

by 서동휘

나는 나를 놓지 못하겠다. 결국 나는 나를 오롯이 놓지 못했다. 나는 나를 낳았다.

어딘가에 나를 고스란히 내려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나를 놓아주지 못한다는 건 무엇일까? 나를 내 모습 이대로 온전히 바라보는 게 어렵다. 나는 그리도 내가 어려웠다.


“글의 시작으론 좋겠지만, 이게 결론이라고?” “애석하게도 교수님 이게 이 소설의 결말입니다.” 결론이 참 자네다워. 하지만 자넨 소설보단 시가 어울리는 듯하군.

교수님은 내게 시가 어울린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시를 단 한편도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접근한 건 윤동주 선생님의 시였다. 자화상이란 시를 특히 좋아한다. 나 대 나로

이렇게 시를 잘 쓰는 분이 우리나라 사람이란 건 참 존경스러운 일이다.


이 소설은 조금 특이하다. 나를 닮은 인물이 주인공이다. 나는 나를 닮은 인물을 창조해야만 하고, 그 인물은 당신에게 와닿아야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나도 어렵다.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그렇게 보고하기로 했다.


“자네 글은 참 좋아, 하지만” 교수님은 뭔가 말을 아끼는 듯했다. 까만 눈 속 흔들리는 초점이 교수님의 마음을 비언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서, 사실 굉장히 낯설어, 일부러 낯설게 만든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맞습니다. 역시 교수님이시네요”

교수는 교수인지, 이 소설의 의도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교수님과는 사실 친분이 좀 있다.

교수님은 아빠 친구다. 우리 집에 꽤나 자주 놀러 오는 사람이다. 그래서 얼굴은 익숙하다.

하지만 학교에선 그렇게 아는 척을 하지는 않는다. 귀찮을 뿐이다.


나 보고서를 이제 본격적으로 써보자. 먼저 내가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부터 작성해 보고자 한다. 나는 교수님을 닮고 싶지 않다. 교수님은 조금 이상하다.

아빠와 친구라곤 하지만, 정말 친구가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내가 교수님을 이상하다고 여긴 것은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본명으로 부르지 않아서이다.

“어이 봉팔이.” “애 앞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

우리 아버지의 이름에 ‘봉’이 들어가긴 한다. 우리 아버지의 이름은 김봉섭이다. 아버지는

시골 출신이다. 아무리 시골에서 정이 들어서 그렇다곤 하나, 아버지가 질색팔색하는

본명 아닌 별명을, 아버지가 그래도 50은 넘으셨다. 그냥 아버지를

자기보다 조금 낮은 위치의 계급으로 설정했다. 아버지는 힘에 부쳐, 일찍 은퇴했고,

자신은 아직 현역에 있으니까. 이러한 말하기가, 죄송하지만 사람이 참 졸렬하다. 그 사람과 같은 대학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정말 어색하다. 그래도 내 글에 대해선 정확한 평가를 해주니 다행이다.

이 교수가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 이 글에 나오는 교수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그와 반대로 닮고 싶은 사람은 누군가?라는 질문을 할 테다.

사실 아직 발견치 못했다. 그래도 나는 나를 닮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단점이 많고, 가끔은 말을 더듬기도 한다. 초등학교 발표할 때 실수로 소변을 쏟아낸 이후로, 나는 발표만 하게 되면 말을 더듬게 되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때 별명이 더듬이였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내 감정을 잘 통제하는가? 꼭 그렇지도 않다. 하루는 버스를 타다가 삼국지 관우가 죽는 장면이 너무 슬퍼서 쾅쾅 울고 말았다. 굳이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버스 안에 메아리쳐 울릴 정도로 강하게 울었다. 조금 억지라 여기는가? 아니다. 난 진짜로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해서, 대학을 등하교할 때만 빼고는 최대한 밖에 안 있으려고 한다. 즉 집돌이란 이야기다.


세 번째 질문은 나는 어떨 때 살아있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요즘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다. 나는 철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다. 별별 철학자를 수업에서 다 만난다.

철학은 사람을 조용하게 사색하는 힘을 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떨 때 살아있다 느끼는가.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 즉, 나란 존재가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해서 나는 살아있다. 하지만 이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질문의 요지는 무엇을 할 때, 살아있다고 느끼는가.이다. 질문과는 조금 먼 이야기지만, 봉사를 좀 좋아하긴 한다. 이럴 때 살아있다고 느끼는 건지. 확실하진 않다. 아, 봉사와는 별개로 나는 운동을 극히 싫어하긴 한다. 봉사도 야외로 나가는 것이고, 운동도 실내운동을 제외하곤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운동을 싫어하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이렇게 조금 특이한 소설을 쓸 때, 살아있다고 느끼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정확히는 나는 나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제법 그래도 성인인데, 나는 방황하는 칼날과도 같다. 칼날은 방황하게 되면, 베지도 찌르지도 못한다. 칼이 칼인 이유는 칼날이 제 길을 잘 가서 그렇다.

제 길을 잘 간다는 것은 베거나 찌르기 둘 중 하나를 성공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흠 확실히 내가 나에 대해 보고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과 생각이 충돌한다. 이 글을 교수님께 보여드린 결론으로 끝내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확신 없는 글을 쓰는 것인가. 하,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커피로 내 몸을 향하게 됐다. 아직 네 번째 질문을 생각하진 못했다.


커피를 98일째 끊어왔지만, 99일째 되는 오늘 실패했다. 생각을 많이 하면, 이상하리만큼 커피가 나를 부른다. 마치 나를 잡숴주세요. 하고 노래하는 게 느껴진다. 커피는 꼭 아메리카노를 먹는다. 그냥 자주 먹다 보니, 다른 커피를 굳이 마셔야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 사실 메뉴를 고르는 시간마저 나는 귀찮은지도 모른다.

세 번째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기 위해,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마침 학교도 방학을 했다. 3가지가 좋다. 첫째, 교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둘째, 나는 너무 쉬고 싶었다. 잘 됐다. 셋째, 성인이 된 후 첫 여행이다. 사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


여행지는 아버지께 추천받았다. “내가 여행지를 추천하는 게 의미가 있어?”

“그럼, 내가 아는 사람 중, 아빠만큼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도 드물어”

“네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건 아니고?” “그것도 맞긴 하네.”

친구가 대단히도 적은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친구가 많다. 그것이 때론 부럽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다. 그래도 내 곁을 지켜주는 진실한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여행에 대한 기록을 책에 쓸까. 쓰지 말까. 고민했다. 결국 고민 끝에 쓰지 않기로 했다.

좋은 추억을 쌓으며 답을 얻어올 수 있을까. 했지만 답은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을 갔다가 독감이 걸려서 이틀이나 고생했다. 한 가지 교훈은 얻었다. 사람이

하지 않던 짓을 갑자기 하면 탈이 난다.


커피는 다시 끊기를 시작했다. 사실 여행지에서 제일 부족한 것은 돈도, 시간도, 지식도 아니었다. 잠이 너무 부족했다. 여행 첫날부터 잠을 못 자기 시작했다. 그래서 커피를 끊기로 했다. 방학을 시작하고 벌써 사흘을 썼다. 그 이후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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