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고서

3화

by 서동휘

나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면, 나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향한 아픔이 느껴진다. `

나의 이상과 현실이 마치 충돌하는 듯 한 기분도 느껴진다. 나라는 사람은 상당히 어설프고,

꽤 지루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하루는 그냥 쉬기로 했다. 쉼이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쉬기로 했다.


나는 보통 쉼을 쉴 때,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는다. 그런데 문득 다른 장르를 듣고 싶은 생각이 났다. 내가 듣던 락이 아닌, 클래식을 들었다. 확실히 어색하다. 그러나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락은 가사가 있다. 클래식은 가사가 없다. 클래식에 무지한 사람이어서, 그냥 유명한 곡들 들었다. 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유명한 선생님들 음악. 그런 음악을 무려 7시간이나 장장 들었다. 듣다가 보니 취향에 맞는 듯해서 들었다.

하루를 쉬면서, 나 보고서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서, 나 보고서 5번째 질문을 만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건 무엇인가?’

나를 괴롭히는 게 무엇인가? 마치 철학과도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답이 쉬웠다.

현재 딱 3가지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첫째, 나 보고서를 몇 번째 질문에서 끝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정하지 못했다. 둘째, 어떤 사람들을 더 만날 까에 대해 정하지 못했다.

셋째, 불안이 나를 괴롭힌다.


나 보고서는 사실 길게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근데 쓰다 보니 길어져서, 이걸 어떻게 마쳐야 할지 감이 안 온다. 현재로는 20번째 질문쯤 마무리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둘째, 어떤 사람들을 더 만날까는. 나 보고서를 쓰다 보니, 너무 혼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좀 더 만나면서 글을 써야겠다고 느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게 어쩌면 당연하지만, 난 만나기 싫으면 안 만나는 주의자다. 그래서 사실 좀 겁이 나기도 한다. 물론 나는 대인기피증은 아니다. 그래도 겁이 나긴 하다. 나는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데 꽤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겁이 나긴 하지만, 갇혀있는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만나야겠다.


불안이 나를 괴롭힌다. 그냥 불안하다.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고, 무언가를 해도 불안하다.

불안장애가 아닐까도 걱정했다. 부모님께 말할까도 많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 생각조차 불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보고서에 몇 자를 더 적었다가, 방금 지웠다. 지우고 나니까 더 써지는 듯하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이렇게 불안해서야 글이나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란 판단이 앞선다.

여섯 번째 질문이 방금 떠올랐다. ‘나 보고서가 주려고 하는 느낌은 무엇인가?’이다.

나 보고서는 과연 어떤 느낌을 주고 싶은 걸까? 사실 이 보고서의 주제이기도 하다.

나 보고서는 ‘만족’과 ‘불만족’ 사이를 걸어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보고서.

이런 느낌을 주고 싶다. 참 특이한 보고서다.

여섯 번째 질문은 짧게 답했다. 주제를 향해, 주제넘지 못한 내가 길게 쓰는 것도

꽤 이상하다고 여긴다.


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여태까지 쓴 나 보고서를 보여주었다. 좋은 말을 건네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보고서가 참 특이해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듯 해” “솔직히 나는 불호야, 너무 읽기가 까다로워” 친구의 솔직함을 듣고는 솔직히 나 보고서를 더 이상 쓰지 말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걱정은 걱정일 뿐, 걱정대로 하진 말자고 여겼다. 걱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일곱 번째 질문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와 싫어하는 단어는 이란 질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꽤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단어가 사랑과 희망이다.

사랑과 희망 두 단어를 사용해서, 내가 한번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었다.

‘사랑이 있기에,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기에, 사랑이 있다. ’ 짧으면서도 그럴싸한 문장이다.

문제는 그럴싸하긴 한데,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장이다.


부록처럼 더할 말이 있다면, 내가 사랑이란 단어와 희망이란 단어를 왜 좋아하는 가이다.

사랑이란 단어가 나도 모르게 사랑스럽다. 특별한 이유를 모르겠다. 사랑이란 단어를 볼 때, 혹은 쓸 때 나는 포근함과 다정함을 느낀다. 마치 이불 같은 다정함과 포근함이다.


희망이란 단어를 왜 좋아할까? 힘든 삶을 조금 겪긴 했다. 그래서 희망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불안이나 고통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은 살아갈 힘을 주니까. 불현듯 생각난 문장이 있다.

‘희망이 없이 사는 건 괴로운 일이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있는 사람은 다시 힘을 낸다. 그러나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힘을 내지 못한다. 사람들이 죽을듯한 고통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현재도, 미래도 희망이 없다고 느껴서다.’라는 문장이다.


나는 나 보고서를 쓰면서 고통을 느끼고 있나? 고통스럽진 않다. 조금씩은 괜찮아지는 듯하다.

희망을 노래하는 책들을 보면, 용기가 생긴다. 용기를 품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책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나 보고서가 희망을 노래하는 보고서인가?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을 노래하는 보고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절망을 노래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나 보고서에 너무 많은 욕심을 담진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욕심으로 점철된, 보고서는 좋은 보고서가 아니다. 나 보고서는 논문이 아니다. 보고서라는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보고서를 쓰고 싶다. 그런 느낌의 보고서를 만들고 싶다. 나라는 사람을 보고하는 특이한 보고서지만, 평범한 보고서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보고서 그런 보고서 말이다.


생각이 수정되었다. 10번째 질문쯤에서 끝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보고서는 너무 길면 지루하다. 나는 지루한 보고서를 만들고 싶진 않다.

그리고 억지로 길게 쓸 힘이 내겐 없다. 또한 나는 보고서를 길게 쓸 만큼 필력이 좋지도 않다. 필력이 좋지 않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괴로움을 벗 삼아서 조금씩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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