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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May 17. 2021

[랜선-JIFF:들이] 파이널 라운드(2020)

중력을 거슬러 거꾸로 매달린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중력을 거슬러 거꾸로 매달린 배 한 척. 여기 금방이라도 아래로 후두두둑 떨어질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본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저 배에는 만 10-11살로 추정되는 '일리'(한국이라면 초등학교 5-6학년 정도)가 타고 있다. 그는 모로코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으로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친구들과 밀항을 시도한다. 일리의 어머니는 벌써 일리를 두고 다른 나라로 떠난 것 같다. 일리는 혼자 알아서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많은 것을 일리에게 남겨주고 갔지만, 그는 그것들을 혼자 지켜낼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일리는 팬티 속에 숨긴 돈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자신보다 조금 이 세상에 먼저 적응한 친구들에게 빼앗겼다.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는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빼앗았다. 일리는 계속 말하지만, 어른들은 일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리의 잘못을 비난한다. 거꾸로 매달린 배에서 깊은 바다 속으로 떨어진 일리는 죽음을 경험한다. 일리는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다음 세 장의 사진을 찍었다.


첫 번째, 일리는 탠지어로 가는 버스에서 라시드와 살렉을 만난다. 이들은 일리와 친구가 되길 거부하지만, 일리는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기술들을 사용하며 그들의 친구가 되고자 몸부림친다. 라시드와 살렉은 탠지어에서 '밀항꾼 아저씨'를 만난다. 친구들이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일리는 고양이랑 놀며 그들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일리에게 허락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저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건너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러나 '밀항'이라는 '상품'은 가격 변동이 크고, '정품'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일리는 이 '상품'의 '구매 대기자' 신분이다.

두 번째, 라시드, 살렉, 일리는 탠지어에서 같이 다니기로 했지만, 세 친구의 관계에서 가장 먼저 버림받을 수 있는 것은 일리이다. 라시드의 살렉의 관계는 일리보다 돈독하다. 일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라시드에게 내어 놓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밀항하는 배에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라시드는 일리에게 돈을 돌려주고 살렉과 함께 떠나버린다.

세 번째, 밀항꾼에게 속은 라시드와 살렉의 목적지는 스페인이 아니라 도로 모로코였다. 라시드와 살렉은 실패했지만, 일리는 이들을 탠지어에서 만나 무척 반가웠다.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고, '사막쥐'라는 별명을 가진 이챔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며 모로코를 떠나지 않고 돈을 벌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물론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이챔 아저씨는 일리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자신의 죽을 날을 아는 낙타가 되고 싶다던 이챔 아저씨는 이권다툼에 목숨을 잃는다.


뒤편에 쉬지않고 파도치는 바다를 두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일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쏟아낸다. 일리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입에 성냥불을 넣는 묘기를 부려야 겨우 잠시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다. 마치 친구들이 다 죽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정도는 가지고와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로코 땅에 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던 일리와 그의 친구들은 자본이라는 자기장이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려 배를 탄다. 동시에 스페인 땅은 외부인을 밀어내는 또 다른 자기장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끌고 미는 힘이 뒤죽박죽 섞인 지브롤터 해협의 조류는 조그마한 배를 가만 두지 않는다. 매해 너무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지만, 혹자는 '어리석은 도전'에 대한 대가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빵 부스러기 처럼 남아있는 모로코의 스페인 멜리야와 세우타, 스페인의 영국 지브롤터의 역사는 일리에게 '어리석은 어린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지브롤터해협이 만약 육지라면 걸어서 3시간 정도 걸린다.


오늘도 중력을 거슬러 거꾸로 매달린 이들은 과연 얼마나 버텨낼  있을까?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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