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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May 18. 2021

[랜선-JIFF:들이] 단편영화 <마리아와 비욘세>

: 다들 입 좀 다물어줄래?


“손님, 방금 요 앞에 오셨던 분 있잖아요, 그분 아버지가 갑자기 신내림 받아서 집이 난리도 아니래요 글쎄"

“그레이씨, 어제 그 여배우 얘기 들었어? 와 나는 그 여자 진짜 순진하게 봤는데 웬일이야.”

“야, 그 새끼 게이야. 딱 보면 모르겠냐?”

 


참 말이 많은 세상이다.

어디를 가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군가에 대한 “말”이 세상에 나오면, 너도나도 몰려와서 자극적인 말을 보태고, 그 말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기기에 바쁘다.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눈뭉치처럼 몸집이 불어난 "말"은 쉽사리 녹지 않는다. 이런 행태를 보고 있자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던 옛 속담이 만고의 진리처럼 느껴진다. 영화 리뷰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뭔 잡소린고? 하겠다만, 오늘 소개할 영화가 바로 이 “말” 때문에 고통받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작에서 발견한 보석같은 영화,

송예찬 감독의 <마리아와 비욘세>를 소개하려한다.   


돌잡이에서 마이크를 손에 쥔 미래(마리아)는 무럭무럭 자라 비욘세를 꿈꾸는 중학생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연예 기획사로부터 오디션 제안을 받게 되는데, 미래는 코앞에 닥친 오디션보다 데뷔 이후 구설수를 만들어낼 자신의 과거가 더 걱정이다. 미래는 곧장 과거 세탁을 위한 목록을 작성하고,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SNS에서 삭제할 사진을 고르고, 인성 논란에 휩싸일까 싶어 사이가 틀어진 친구에게 사과 편지도 쓴다. 무엇보다 그때 그 섹스를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한다. ‘남자랑 잔 게 그토록 죽을 죄인가?’ 싶다가도 소문이 도는 순간 전부 끝장나리라는 확신이 든다. (*전주영화제 홈페이지 영화소개 참조)     


친구와 필담을 나누고 있는 미래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계속해서 생성되고 퍼져나가는 “말”들과, 그 "말"들을 주워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미래를 보여준다. 영화는 수업시간에 친구와 필담을 나누는 미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필담 또한 여러 말들이 오가는 말의 장이다. 필담을 나누는 친구와는 유대의 장이 될 수 있지만, 글로 기록되기에 말이 퍼져나가는 시작점이 될 위험성 또한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미래는 숨기고 싶은 문장을 검정 펜으로 열심히 덧칠해 지운다. 현서와 대판싸우며 과거의 미래가 쏟아내었던 험한 말들은 현재의 미래가 정성가득한 사과편지로 지워나간다. 이번에는 연애사를 지워야한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미래는 공부를 핑계삼아 남친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남친은 미래에게 언성을 높이게 되고, 카운터에 앉아있던 편의점 알바생은 그들의 싸움을 엿듣기 위해 슬며시 이어폰을 뺀다. 말을 지우러 왔는데 또다른 말이 세어나간다. (이후 이 알바생은 편의점에서 콘돔을 잘못짚은 미래에게 “지난번 그 친구랑 화해할 때 써”라는 헛소리를 지껄여 미래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미래의 과거 청산 리스트
마이크를 들고 분노를 표출하기 직전의 미래

말을 주워담고 지우려 했는데, 말들은 계속 미래에게서 멀리멀리 도망가버리고 새로운 말들을 생성해낸다. 끝이 없어보이는 말과의 술래잡기 속에서 미래는 결국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공포를 느끼게된다. 그로기상태에 빠진 미래는 결국 마이크를 잡는다. "너네 앞으로 섹스하기만 해봐, 이 시발놈들아!!"


영화는 제목처럼 마리아와 비욘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만, 마리아와 비욘세는 두 명이 아닌 한 명, 미래를 지칭한다.(마치 센과 치히로처럼) 즉, 마리아와 비욘세는 미래가 지닌, 아니 지녔다니보다 세상으로부터 강요된 이중 자아를 나타내고 있다. 세상은 그에게 마리아이자 비욘세가 되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무대 위에서는 섹슈얼적인 매력을 표출해야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마리아처럼 순결(사실 여기에 순결이라는 표현도 쓰고 싶지 않지만)을 유지하길 바란다. 이것은 결국, 여자 아이돌, 그리고 10대와 20대 여성 모두에게 요구되는 잣대이다. 미래의 잠자리 상대인 남자선배는 "우리 잔거 걱정안되냐는" 미래의 질문에, "그게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다시 말 많은 세상의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여성에게만 마리아와 비욘세를 동시에 수행하길 요구하는 그릇된 시선은 그렇다치더라도,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왜이리 스스럼없이 무차별적으로 해대는 것일까? 그것도 '관심'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결혼 언제할꺼야?"에서부터 "지금 사는 집은 전세야 자가야?"까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는 오지랖에 숨이 막힌다.


2019년 <가장 보통의 연애>로 데뷔한 김한결 감독 또한 '말'많은 세상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감독 중 하나이다.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도 뒤에서 열심히 주인공을 씹어대던 직장 동료들의 단톡방 대화가 들통나는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었다. 김한결 감독은 장편 데뷔 이전에도 여러편의 단편에서 '말'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그중 2011년 <술술>은 그 정점에 이르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제목부터 남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지껄이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가십들을 함부로 놀리다가 결국 술을 마시던 친구들과 술집의 종업원들까지 개싸움이 나는 <술술>의 마지막 씬은 <가장 보통의 연애>에 등장한 회식 중 난동장면과 닮아있다. <술술>의 대학생들이 버릇을 못고치고 직장인이 되어서 <가장 보통의 연애> 속 직장동료가 된 것일까? 판도라의 상자를 연 선영(<가장 보통의 연애>의 공효진 역)은 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아니, 근데 이게 진심으로 재미있어요, 예?"


'말'때문에 일어난 소란 : <술술>(2011)과 <가장 보통의 연애>(2019)


나 또한 이 말 많은 세상에 입을 보태고 있진 않은지 생각한다. 항상 경계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한 나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사람 사이에 말이 오고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익명의 논객들이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는 그 입놀림이 더욱 가벼워진 것만 같아 걱정이다.(너무 노인네의 푸념같이 들리지만) 오늘도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 큰 고통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남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외쳐본다.


입 좀 다물어줄래?


Norman Rockwell의 <The Gossips>(1948)  /  David Shrigley의 <Shut Up>(2018)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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