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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May 24. 2021

[랜선-JIFF:들이] 단편, 이렇게나 유연한

단편영화 <남남>, <정말, 정말로 축하합니다>

영화제에서 하는 많은 섹션 중에서 그때만 아니면 보기 힘든 섹션이 있다.

장편영화는 이래나 저래나 극장에서 상영을 하며, 독립영화는 개봉이 진행되는 작품에 한해서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단편영화는 웬만한 기획전이 아니고서야 극장에서 만나보기 힘들다.


최근 5~6년간에는 단편영화를 전문으로 배급하는 회사들도 늘어나고 이러저러한 기획전도 하는 편이라서 그나마 쉽게 만나보지만, 그래도 스케줄은 왜 이리 맞지 않는지... 하면서 단편영화 마니아들은 영화제를 기약하곤 한다.


5월 8일에 폐막을 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단편, 특히 한국 단편은 '한국단편경젱', '코리안 시네마', '코로나, 뉴노멀', '인디펜던트 우먼', 'J 스페셜' 섹션에 걸쳐 상영되었다.


올해는 온라인 상에서 단편의 상영이 지난해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작년에 온라인으로 공개한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작의 경우는 극장에서 상영하듯이 '한국단편경쟁1', '한국단편경쟁2' 와 같이 네 편에서 다섯 편 정도 묶어서 공개하였다면, 이번 영화제에서는 작품 개별로 볼 수 있게 공개하였다. 단편은 작품 한 편 당 1500원. 원하는 작품을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묶여있는 단편을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그런 재미는 조금 줄어든 것 같아 아쉬웠다.


이번에 전주영화제를 통해서 만나 본 단편 영화들 중 이 글에서 소개할 단편은

한국단편경쟁 섹션의 한 편과 코로나, 뉴노멀 섹션에서 한 편이다.



<남남> (고경수, 2021) - 한국단편경쟁 섹션

- 기타를 멘 민철이 산에 올라가고, 현진 헉헉대며 그와 발을 맞춘다.

단편영화를 장르라고 할 때 그것 때문에 관객에게 공통적으로 용인되는 것들이 있는데, 이 영화의 톤과 색감이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 단편영화하면 (필자의 경우에는) 어딘가 부족한 조명, 정돈되지 않은 화면의 톤, 방금도 길에서 들은 것 같은 날 것의 대사들이 쉽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영화를 보면서 아, 단편영화의 톤이다.라는 게 첫인상이었다. 촌스럽기보다는 날 것에 가깝고, 또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오는. 딱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 산을 오르는 두 남자의 이야기. 제목만을 보고 혹시 퀴어영화인가 했는데, 맞았다. 사진 속 두 인물은 연인이었다. 민철(황색 셔츠)은 현진(파란 민소매)과 헤어지고 난 뒤 오랜만에 느닷없이 기타를 메고 산을 오른다. 남남이 된 남남이 산을 올라가면서 꺼내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아 이 커플은 이래서 헤어졌나'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말과 행동이 한없이 가벼운 현진, 작은 것 하나하나 세심한 나머지 그러지 못한 상대방이 불만인 민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우리도 헉헉거리면서 이들이 도달하려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


영화가 시작하면서 현진은 계속 묻는다. 산에 왜 오르냐고.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왜 오르는지 진짜 몰라서 묻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민철은 계속해서 기회를 줄려고 하지만 현진은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건 현진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있는 대로 행동했기 때문인걸.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 날 것의 영화를 전주국제영화제가 초청한 것에 이의가 들지 않았다. 그 큰 이유는 이 커플이 커밍아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 정황상 그들은 군대 선후임이었고,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만남이 최근 헤어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이런 퀴어 영화에서는 커밍아웃 혹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한 소재가 되어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연우진과 이재훈이 무명시절 출연했던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사이>는 엄마에게 연인 사이를 들키는 것이 영화의 중심축이 된다.


물론 커밍아웃과 정체성 고민은 많은 개인들이 현실적으로 사회와 부딪히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며 앞으로도 긴 기간 동안 풀지 못할 숙제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영화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는 현실에서 한 걸음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이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지금의 한국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에서 이들이 마주하는 사회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대수일까. 그들은 그렇게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말, 정말로 축하합니다> (제환규, 2020) -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

- 철훈은 화상회의를 하던 중 동료들에게 생일을 축하받는다. 이후 집에서 쉬던 철훈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보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만날 수가 없다. 곧이어 철훈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하지만 상사의 연락임을 확인한 철훈은 이내 실망한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 철훈. 그때 한 기기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 개봉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이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 최근 드라마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배우의 얼굴이 흥행에 강한 요소를 미치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많이 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이 섹션은 참으로 궁금한 섹션이었다. 동시대 영화가 코로나를 어떻게 담아내는지, 사실 잘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나마 조금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단편 <정말, 정말로 축하합니다>는 오프닝부터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장면으로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 화면에 분할되어 등장하는 비대면 회의 장면. 삐뚜로 빼뚜로 필진과 회의를 할 때도 항상 저렇게 진행한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오프라인 회의에 참석해본 적이 없다 ㅠ)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에 대한 기획회의 일까, 무튼 주인공이 브리핑을 마치고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 한마디 씩 하고 나서 회의는 끝이 난다.


오늘이 생일이라는데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생일 축하도 별로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하는 철훈. 1인 가구처럼 보여서 그런지 텅 빈방에 홀로 생일을 나는 사실에 더 우울해 보인다. 철훈은 이 우울을 타개할 방법을 찾는데, 그때 보이는 것이 바로 아까 자신이 발표했던 아이템. VR 기계를 쓰면 방이 밝아지며 사람들이 케이크를 가져오고 생일 모자를 씌워준다. 가상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비말로 인한 바이러스 전염 걱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상황을 만끽한다.


<정말, 정말로 축하합니다>는 서사랄 것이 없다. 하지만 모든 영화에서 서사가 중요하지는 않다. 앞 영화를 말하며 '영화는 현실에서 한 걸음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라고 말했었는데, 그것에 전제하는 물음은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가?'이다.


코로나와 관련한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나오고 있는가? 그전에 찍었던 영화들도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연기되는데, 이를 소재로 영화를 찍어 지금 개봉하기에는 상업영화의 문법과 너무 맞지 않는다. 상업 장편영화의 이러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것이 다큐멘터리, 그리고 단편영화라는 것이 이번 섹션으로 드러나게 되었지 않을까.




상업 장편영화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대중들이 좋아하는 방향을 쫓다 보니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하거나, 급작스런 사회 변화를 빠르게 담아내는데 어려움이 있다. 장편영화에서 잘 소화되는 주제들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며 쉬이 해결되지 않는 해결이 나지 않는 답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제에서의 장편 수상작은 현재 사회를 빠르게 반영하고 한 걸음 더 앞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으레 선택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에 비해 제작기간도 짧고 유통의 조건도 까다롭지 않다. 물론 완성도 측면에서는 상업 장편영화와 비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단편들을 만나며 하나 확실한 느낌이  것은 그만큼 변화에 민감하며 사회를 즉각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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