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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un 07. 2021

나쁜 사람들 속 사람 하나

<스파이 브릿지>(2018) 리뷰


 스릴러(thriller)는 긴장감을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내러티브 공식을 가진 영화를 총칭한다. 관객은 사건 밖에서 사건을 관찰하며 과연 결론이 어떻게 끝날지 추리해가며 영화를 본다. 따라서 스릴러 장르는 대개 흔히 유추할 수 없는 작은 플롯들을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매 순간에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2015년 하반기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가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1957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 각 국의 스파이를 맞교환을 이뤄낸 한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당시 냉전시대에서 미국과 소련의 긴장감 속의 이 사건은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재탄생하였다. 보통 정통 스릴러 영화는 범죄를 저지른 자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스파이 브릿지>는 개인이 저지른 범죄가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누가 이 범죄를 저질렀나?’라고 묻는 후더닛(Whodunit) 구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스릴러의 하위 범주인 스파이 스릴러이기 때문에 ‘사건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 될까?’에 초점을 맞춘 왓윌비(What will be)라는 질문을 중심에 둔다. 영화는 사건의 결말을 법정영화적인 전반부와 협상스릴러 같은 후반부로 내용이 양분되어 관객들에게 상영된다.



전반부 : 스파이와 법정 시퀀스


영화의 오프닝에 소련 출신 스파이인 루돌프 아벨이 등장한다. 화가로 미국에 살아가는 그를 미국 정부의 요원들이 뒤쫓는다. 오프닝부터 미행이라는 장치와 스파이 지령을 담은 동전 등의 도상은 관객들을 서스펜스를 느끼게끔 한다. 오프닝의 말미에 요원들이 그의 집을 습격하고 카메라는 스파이 증거물을 제거하는 루돌프의 손을 잡으며 관객은 ‘무사히 넘어 갈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다음 컷에서 관객은 감옥에 있는 루돌프를 본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관객을 영화로 끌어들인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범죄로 끌어들인다. 오프닝은 관객이 루돌프의 편에 서도록 그를 중심으로 연출되었다. 루돌프가 잡히지 않길 바라던 관객은 감옥 속의 그를 보고 자신이 루돌프가 된 듯이 마음을 졸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오프닝은 스릴러 영화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관객에게 긴장을 주기 위해서 범죄라는 환경을 만든다. 그러고는 주인공이 비일상적인 세계에 던진다.

주인공 제임스 도노반은 보험 관련 변호사이다. 차 주인이 세 명을 친 교통사고 등을 처리하는 보험 전문가이다. 하지만 그에게 불현듯 스파이의 변호라는 익숙지 않은 일과 맞닥뜨린다. 그 이후에 제임스는 이전의 세계와 완전 다른 세계로 살아간다. 관객은 제임스와 같이 이동하며 긴장감을 느낀다. 그는 지속적으로 루돌프와 만나며 변호를 준비한다. 초반부부터 중반부 전까지는 법정 시퀀스를 활용한다. 당시 미국은 냉전 중이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소련을 향한 적대감이 심각할 때였다. 당연히 법정에서 제임스의 변호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스파이 변호로 얼굴이 알려지게 되어 일반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총기 테러 위협 또한 받는다. 하지만 제임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루돌프를 스파이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법정 관람자의 야유, 변호를 추천한 사람들의 반공적 성격 등이 제임스의 고독한 싸움에 등장한다. 그는 드디어 노력 끝에 루돌프를 사형이 아닌 30년 형을 받게 한다. 이 법정 시퀀스에서 냉전시대라는 커다란 힘의 충돌 사이에 홀로 노력하는 개인의 모습을 확대 시키면서 영화는 긴장을 이끌어 냈다.


중반부의 영화는 카메라를 조금 다른 쪽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루돌프의 법정에서만 스릴을 끌어내지 않는다. 제임스 도노반은 재판 중에 판사에게 루돌프를 혹시 일어날 스파이 맞교환을 위해서 살려 두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의 말은 영화의 복선이다. 영화 초반에 미국 정부의 비밀 스파이가 된 공군이 등장한다. 관객은 이 등장인물이 어떻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지 궁금해했고 루돌프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 까지 영화는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미국 CIA의 조종사인 프렌시스 게리 파워스의 플롯이 루돌프의 판결 이후 시동을 건다.


후반부 : 협상 시퀀스와 냉전


게리 파워스는 비밀 정찰비행 임무를 받는다. 영화는 촬영용 비행기를 아주 근사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연출방법 또한 스릴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이다. 비행기는 일종의 맥거핀(macguffin)이다. 중요한 역할을 할 듯했던 비행기가 비행을 하자마자 적에게 추격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관객은 허무함을 느낌과 동시에 각자 추리했던 방향이 엇갈리면서 스릴을 생산한다. 추격후 게리는 추격당했을 시에 사용하라는 독침이 있는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동전은 상관이 준 것으로 자살용 동전이다. 동전이란 도상이 두 번째 등장한다. 처음에는 루돌프가 벤치 밑에서 찾아낸 첩보 지령이 들어있는 동전이 등장하였다. 우연치 않게 스파이가 사용하는 물품으로 둘 다 동전이 등장하였다. 동전은 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운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흔히 내기를 하거나 결정을 할 때 동전을 던져서 나온 앞, 뒷면에 따라 결과를 결정하기도 한다. 두 개의 동전 모두 스파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장치이다. 또한 영화에는 긴장감을 가져다 주는 요소이다. 루돌프의 동전은 ‘과연 첩보 활동인 걸릴 것인가’의 긴장을 초반에 가져다 주었다면, 게리의 동전은 ‘과연 게리는 비행기 추락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게리는 분명 두 상황, 즉 자신이 비밀 첩보요원이기에 자살을 해야하는가 아니면 본능에 따라 국가의 명령을 거역하고 살아야 하는 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의 고민은 관객도 똑같이 느꼈다.

게리가 소련에 잡히고 난 뒤, 미국 당국은 제임스에게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비밀스런 임무를 부여한다. 도와는 주겠지만 공식적인 지원은 아니라는 책임 없는 정부의 말에 제임스는 비행기를 탄다. 그는 루돌프와 게리의 맞교환을 준비하다 프라이어라는 유학생이 동독에 억류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부는 아무런 관심없는 이 학생에게도 제임스는 관심을 가진다. 이 영화의 정점은 제임스가 루돌프 한 사람과 게리와 프라이어 두 사람을 교환하기 위해 협상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관객은 주인공인 제임스나 극중 인물들 보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된다. 붙잡힌 게리의 고문과정 등의 미약한 정보를 관객은 얻게 됨으로써 더 다양한 추리를 하게 된다. 과연 게리는 소련이 원하는 정보를 주었는지 주지 않았는지 서스펜스를 느낀다.

제임스가 민간인 신분으로 혼자 동베를린에 들어가 불리한 위치에서 대담한 협상을 벌이는 대목은 총성 한 방 들리지 않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데도 단단한 긴장감으로 관객을 발아들인다. 협상에서 미국은 최대한 자국의 정보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게리를 데려오는 것만 신경쓴다. 여기에서 제임스가 가지는 휴머니즘이 미국 정부의 의견과 줄타기를 한다. 제임스가 동독에 억류된 학생을 신경쓰지 않닸다면 영화 후반부의 긴장은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휴머니즘이 영화에서 제일 큰 긴장을 만들어내었다. 영화 속 협상은 그 앞을 볼 수가 없다. 제임스는 이들과 만나면서 차례대로 협상해나간다. 소련 측은 처음에 아벨을 믿지 못해 동시교환을 거부한다. 동독 측도 프라이어의 교환을 동의하지만 소련과 같이 교환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1:1교환을 원한다며 거부한다. 제임스의 휴머니즘적 신념은 이를 끝까지 몰고가며 협상을 완성한다. 뒤집어질 듯한 협상과 뚝심있는 제임스의 대사들, 그리고 마지막 협상의 성공을 알리는 전화벨 소리까지 관객에게 스릴을 느끼게 하는 장치들이다.

이런 협상전에서 스릴을 구성하는 메타적인 구조는 역시 냉전이라는 상황이다. 이 영화에서 큰 축으로 미국과 소련이 자리하고 있고, 거기서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동독이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전반부의 법정 시퀀스는 국가로서의 미국과 소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스파이 사이의 스릴이었다면 후반부의 협상 시퀀스는 국가의 입장이 서스펜스의 생산에 적극 개입한다. 큰 긴장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생긴다. 냉전 시대에서 이들은 상대국의 스파이를 한 명씩 붙잡고 있다. 여기서 각국은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정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스파이 맞교환을 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과 게리를 교환하는데 팽팽한 줄다리기 협상을 진행한다. 이에 긴장을 자아내는 또 다른 국가는 동독이다. 동독은 미국에게 국가로서 인정받기를 원하고 따라서 동독이 억류한 프라이어라는 학생을 아벨과 1:1로 맞교환하길 원한다. 이러한 국가의 이해관계 속에서 제임스의 협상이 영화를 이끈다. 결국 이러한 냉전체제 속의 휴머니즘을 향한 협상이 스릴을 만들고, 제임스로 나타나는 인본주의의 승리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악인들의 안개 속 휴머니즘이라는 빛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중 큰 테마는 구원과 구출이다. 감독은 구원과 구출을 변호사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이 영화의 장르는 스파이 스릴러이지만, 스파이의 첩보활동으로 인한 스릴이 아니라 그들을 구출하는 곳에서 스릴이 인다. 스파이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뚜렷한 악인도 없다. 소련의 스파이인 아델은 영화 오프닝부터 누군가를 저격하는 스파이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국에서 아벨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판사의 모습도, 각국의 이익을 보는 소련과 동독도 그저 악인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스파이 브릿지>의 근원적인 긴장감은 여기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뚜렷한 악인은 없고 그저 자신의 이익만 찾아갈 뿐이다. 그 누구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안개 덮인 상황이기에 제임스의 홀로 협상과정이 스릴을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의 카타르시스는 빛났다. 모두가 뚜렷한 악의는 없지만 자신이 갈 곳만 보는 상대적 악의 속에서 홀로 휴머니즘을 외쳤기 때문이다.

아벨이 극 중에서 세 번 반복하는 짧은 대사가 있다. “Would it help?”이 한마디는 영화의 긴장과 이완을 가져다 준다. 영화 속 장본인은 긴장을 하지 않는 것에서 관객이 이완을 느끼는 한편 앞으로 벌어질 일을 추리해봤을 때 아벨의 이러한 태도가 미약한 긴장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아벨의 대사는 안개 속 상황에서 제임스와 관객에게 긴장을 풀 것을 제안한다. 정작 긴장을 해야 할 장본인은 그 속에서 운명을 바라보고 있다. 아벨은 자신 앞에 펼쳐질 상황이 안개 같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아벨을 통해서 그 안개 속에서 제임스로 대표되는 휴머니즘이 길을 밝혀주리란 것을, 스릴 끝에 카타르시스가 올 것이란 것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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