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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May 10. 2021

영화의 기억을 따라가다 마주한 피 묻은 자루

영화 <장화, 홍련> (2003, 김지운)에 얽힌 어릴 적 추억

   



어릴 적 제일 처음 본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무엇을 '영화'라고 말하는지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겠지만, 나는 이 질문을 생각하면 늘 극장에 있는 어린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유치원 혹은 초등학생일 때쯤 영화는 종종 봤었다. 그러나 많은 기억들이 극장이 아닌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영화들이다.


그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흔히 '드라마'라고 불리는, 장르적인 특징이 명확하지 않은 영화들은 빌려보지 않았던 것 같다. <바이센테니얼 맨>이나 <링>과 같이 특징이 뚜렷한 SF영화나 공포영화를 주로 빌려보았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 '아 내가 어릴 적에 공포영화를 좋아했었구나'였다.) 비디오의 추억은 많으나, 극장의 추억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처음 갔던 극장은 도저히 기억나질 않지만, 유사하게 자동차 극장을 처음 갔던 기억은 남아있다. 그때 봤었던 영화는 역시 어린 '눈썹'이 좋아했던 공포영화였다. 당시 우리 집은 영화관을 가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날이어야만 했다. 경주로 가족 여행을 갔던 특별한 날, 우리 가족은 지금은 사라진 '경주 보문 단지 자동차 극장'에서 <장화, 홍련>을 보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장화, 홍련>을 생각하면 나에게 공포감을 준 무섭고도 강렬한 이미지가 남아있다. 아마 그때는 영화가 보여준 반전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다시 보았을 때, 딱 반전이 나오는 부분부터 처음 보는 영화처럼 리액션을 하면서 봤기 때문이다. (지금 드는 생각은 뒷부분은 아빠 차에서 잠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장화, 홍련> 중에서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괴기한 분위기의 집, 피가 묻어있는 자루 그리고 염정아 배우님이 연기한 새엄마 '은주'이다.




괴기한 분위기의 집


<장화, 홍련> 속 장면은 대부분 집 안을 보여준다. 게다가 집 내부의 인테리어는 어두운 색감과 답답한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공포영화에서 의도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답답하고 좁은 시야를 보여주는데 일조한다.

보통 영화의 계보에서 '집'이라고 하면 <사이코>와 <하녀>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기생충>까지 그 계보가 이어지며, <장화, 홍련> 속의 집 또한 이 스펙트럼 안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집'을 주제로 비평을 했던 영화는 주로 이 층 집인 것 같다.)

흔히 영화에서 집을 소재로 분석할 때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인용하지만,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던 괴기한 분위기의 집은 그러한 구조적인 형태와는 관련이 없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층 집은 항상 '로망'이었다. 특히 '계단'이라는 구조물을 그렇게나 좋아했다. 계단이 있는 조금 먼 친척집에 놀러 간 날이면 계단에 걸터앉고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난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나만의 공간, 병장 안, 책상 밑과 같이 좁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놀 던 나에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은 아주 매력적인 '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어린 나에게 보여주었던 '이층 집'은 내가 신나게 오르내리며 놀지 못하는 공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무서운 분위기... 살벌한 대화 그리고 다닐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상상 속에서 지어진 나만의 놀이 공간을 조금 부수어 놓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피 묻은 자루


영화에서 피 묻은 자루는 영화의 첫 번째 반전이 공개되고 난 뒤에 새엄마 은주가 끌고 나온다. 그 후 언니 수미는 그 자루를 동생이라 생각하고 울면서 풀려고 하며, 새엄마는 그 피 묻은 자루를 집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수미와 몸싸움을 벌인다.

그 자루가 바닥을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며 핏자국을 남기는데, 과연 그 피는 누구의 피인지. 어떻게 되었길래 저렇게 피가 흥건한지 영화에서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 어린 나는 주어진 장면에서 이것저것 상상을 했지 싶다. 그 자루가 어린 나에게 가져다주었던 무수한 상상은 영화가 보여준 것보다 더 공포감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새엄마 은주


시간이 흘러 <장화, 홍련>을 다시 보았을 때 알게 된 반전은 상당히 낯설었다. 나는 영화의 이야기를 다 안다고 생각했었고, 그러한 생각에서 다시 본 영화는 생경감을 가져다주었다. 반전이 드러나는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서 영화 속 새엄마 역으로 나오는 '은주'는 그렇게 나쁜 캐릭터가 아니지 않을까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보았다.

어린 시절 새엄마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던 것은 수없이 들었던 전래동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크다. 콩쥐팥쥐,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에서 새엄마는 언제나 자식들을 괴롭혔으며, 아이들에게는 넘어서야 할 대상으로 그려졌다. 나 역시 어릴 때 그렇게 밖에 생각할 줄 몰랐으며, 새엄마 역을 그렇게 무섭게 생각한 것은 거기서 기인했으리라.


어릴 적 나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위의 세 장면과는 다르게, 다시 보았을 때는 다른 장면들이 더 섬뜩하고 끔찍했다. 괴기한 집보다 이 모든 것을 다 알 것만 같은 잔잔하게 출렁이는 호수, 피 묻은 자루보다 죽는 것이 너무 뻔히 보이는 새장 속의 작은 새, 영화 속 모든 상황을 방관하며 지켜보는 아빠.


'생애 처음 자동차 극장에서'라는 타이틀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써봤지만, 그것들이 '자동차 극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기억 속에 자동차 좌석, 유리 너머 비치는 스크린, 자동차 라디오 주파수로 들리는 대사와 사운드 등은 싹 사라지고 그 화면만 남아있다.


나는 처음 본 영화라는 키워드에서 찾고 찾다가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전에 본 영화를 찾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들을 곱씹어보았다.


여전히 내가 처음 본 영화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마 이런 궁금증을 계속 가지는 것은 내가 영화 언저리를 공부했고, 또 영화 언저리에서 돈을 벌고 있는 지금, 조금이나마 나의 기원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겠지.




By. 눈썹

영화의 오프닝에서 자꾸 무언가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제 눈썹이 세모인 것과는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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